처음 그녀의 노래를 들었을 때 기억난다.
어느 나른한 봄날의 오전 시간
그녀의 목소리는 그대로 내게 걸어들어와 다른 세상으로 끌고 갔다.
그 봄 내내 나는 작약에 취해서 그렇게 작약 보는 재미로 한강을 뛰어갔었다.
처음 그 꽃을 대할 때의 그 미묘한 떨림.
이른 저녁, 늦은 밤, 환한 대낮 어느 시간이고, 꽃의 아름다움에 넋이 나갔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나를 긴장시키고 불안하게 만들며 ,소유욕을 끊임없이 시험한다.
작약의 아름다움과 만나면서도 늘 알 수 없는 불안에 시달렸다.
영원히 내 곁에 있어줄 것도 아니고
내가 그렇다고 붙잡아 둘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 곁에 있다가 떠나가는 것의 공허에 대한 두려움으로 ,매혹된 그 순간부터 이별의 아픔에 대한 예감으로
빠져드는 내 감정을 제어하고 싶었다.
내 마음대로 통제되지 않는 낯설고도 기이한 이질적인 타자였을까
아름다움은 벨벳처럼 말랑거리지는 않았다.
결핍을 예상하면서 시달리고 있을 때 , 무언가를 대체할 수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는데는 능숙하다.
내 마음 속을 가득 채우던 것이 떠나가버릴 때, 그 빈자리에서 위로해줄 대체제로 이 노래에게 무의식중에 몰입하게 된 것 같다.
그 아름다운 것이 내게서 떠나갔을 때, 예상했던 이 대체제는 그 역할을 아주 성실하게 해냈다.
선배언니에게서 받은 작약 50송이가 시들어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더 이상 향기도 탱탱함도 유지 못하고 , 내게 의미가 없어지는 그 때 그것들을 직접 내 손으로 쓰레기 봉투에 넣을 때 참담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벅찬 아름다움이었는데, 이렇게 서러운 운명으로 바뀌는구나
다시 내년에 오겠다는 허망한 약속을 받아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때 나를 어루만졌던 음악
이런 찢어질듯한 이별을 감내하면서 노래하는 그녀의 목소리에 감전된 듯하다.
이건 분명히 그녀의 체험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게 분명하단 생각을 했다.
그녀의 목소리, 진실한 체험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의 울림이다.
가사 하나하나가 한구절도 놓칠 수 없이 귀에 쏙쏙 들어왔다.
한여름 무더위 계속 되던 때는 이 노래를 잠시 제쳐두었다.
같이 질퍽거리면 그 무게감을 감당못할 것 같았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면서 , 하늘이 높아지면서 , 이 노래가 다시 생각났다.
그녀가 공연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가을처럼 조금은 시리고, 쓸쓸한 이 노래 분위기가 그만일듯 싶었다.
미안해요를 절절하게 부르는 그녀의 감정이 고스란히 내게 전해진다.
눈이 말캉말캉 해지고 콧날이 시큰해지면서 이내 눈물이 내린다.
중간중간에 멘트를 지행하면서 하는데, 달변이라기 보다는 진심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노래에 얽힌 사연도 그녀가 겪어낸 것인듯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런 떨림을 저런 흐느낌을 세심하게 표현하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끊임없이 관객의 반응을 살피며 관객과 소통하면서 공연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녀의 노래는 가사 하나하나에도 많이 집중하게 된다.
우리는 사랑했을까.
앵콜곡으로 봄날은 간다와 빗속의 연인,님은 먼 곳에 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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