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이야기

[스크랩] 봄날,long good bye ,흩어지는, 부서지는 그래서...

볼륨Long Goodbyes - Camel음악을 들으려면원본보기를 클릭해주세요.

비가 한두방울 내리는 봄날의 한강 산책 ,유난히 흙냄새가 진하다.

하늘이 어둑어둑 ,그래도 봄날은 여전히 설레인다.

사방 천지 꽃밭 가득 한 봄날

 

 

산수유,개나리, 진달래, 철쭉, ,목련, 살구나무꽃들에 둘러쌓여 있다가 명자나무꽃을 발견했다.

강렬한 빨강이지만, 워낙 앙증맞게 조그만 꽃이기에 관심을 가지고 보지 않으면 눈에 안띌 수 있다.

조그만 꽃에 가득한 열정이 대견하단 생각을 했다.

많은 사람들 눈에 띄거나 관심을 받지 않아도 홀로 저렇게 기특한 꽃들은 더 예뻐해주어야 할 것 같다.

 

 

 

명자나무꽃 

 

복숭아꽃 

 꽃사과 

 

 

(하나—블루스 기타리스트게리무어 공연-올림픽 공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기타리스 중의 하나이다. 게리무어, 로이부캐넌, 리치블랙모어, 랜디로즈..

 

 

게리 무어 공연을 다녀왔다.

너무 소리 질러대고 , 너무 환호하고, 너무 전율하고, 마지막에 parisienne walkways를 연주할 때는 엉엉 울어버렸다.

나도 깜짝 놀라고, 혼란스럽다.

공연을 보면 보통 약간은 너무 감격하고, 좋아서 간혹 눈물을 글썽거리기는 하지만, 이렇게 크게 울어버리긴 처음이다.

내가 왜 그렇게 심하게 오열하면서 그의 파리지엔느 워커웨이를 들었는지에 대해 한참 분석을 해봤다.

 

 

혼자 갔기 때문에 나의 감정을 더 원없이 발산한 것 같았다.

 나를 모르고 나에 대해 아무런 관심을 가지지 않는 사람들 틈에 끼어서 공연을 본다는 게 이렇게 맘 편하고, 자유로운 건지 몰랐다.

여행만 혼자 갈 일이 아니다.

영화만 혼자 볼 이 아니다.

누군가 옆에 있었다면, 이렇게 까지 나의 감정을 다 드러내고 나의 밑바닥 감정을 들여다 볼 수 있었을까

 

지금은 뭐든지 혼자서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는 편에 속하지만, 워낙 어릴 때부터 부모님 두 분이 다 알아서 다 주셨기 때문에 난 정말 고등학교 때까지 문방구 가는 것조차 해본 적이 없고, 그래서 너무나 무서웠다.

 

혼자서 영화보는 거, 혼자서 여행가는 거 남들에겐 비교적 쉬운 일이었을지 모르지만, 나는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혼자 완벽하게 자유롭게 누리고 있는  시간들과 평화에 대해 항상 너무 가슴 벅차고 고맙다.

 

공연은 혼자 가기 너무 싫고 무서웠다.

공연의 취향이 맞는 사람을 주위에서 찾아내기 쉽지 않아, 여지껏 거의 대부분, 지인에게 돈을 지원하면서 같이 다녔다,

 

이번의 게리 무어의 경우, 내 주위에 게리무어를 아는 사람도 별로 없거니와 , 공연을 간다해도 선뜻 vip 석에 돈을 쓸만큼 미친듯이 좋아하는 사람도 없었다.

두렵지만, 혼자 가기로 했다.

 

 

공연을 오자 마자 너무 잘한 선택이라 여겨졌다.

나의 탁월한 선택에 대한 만족, 뿌듯한 감정 그리고..

나와 비슷한 감성적 공감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구나에 대한 안도감, 그리고 감사함

게리 무어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손 잡을 수 있을 듯 싶었다.

 

 

내가  누리고 싶은 모든 문화적인 취향들은 같이 할 수 있는 동반자를 찾기가 너무 어려웠다.

 

중고등학교 대학교 시절, 내 자신에 대한 갈증과 허기짐, 내 존재에 대한 결핍의 많은 부분을 거의 음악을 통해 메꾸려했다.

 

팝송은 내게 거의 신과 같은 존재였다.

매일 매일 팝송일기를 써가면서 나의 구멍을 메우고자 했다.

팝송에 대해 집착할수록 오히려 더 외롭고 소외되어 가는 자신도 바라봐야 했다,

 

내가 늘 말하고  싶어하고, 내가늘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에 대해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에서 느껴지던 허허로움,그리고 좌절감

 

라캉이 말하는  욕망이란,타인들의 욕망을 통해서 인정될 때만 의미를 갖는 법인데,타자의 인정이 없었기에 그렇게 허기졌었나보다.

 

 

 

 

 

 

게리 무어를  몇 년 동안 정말 얼마나   있는 힘을 다해 좋아했는지 모르겠다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내내

거의 게리 무어에게 빠져있었던 것 같다.

 

내 평생에 게리 무어의 연주를 들을 수 있으리라 생각도 못했는데,이런 기회가 오다니, 세상 살아가는 기쁨이란 게 바로 이런 건가보다,.

 

 

로이 부캐넌과 게리 무어의 기타 연주는 밤에 들으면 더욱 더  아프고, 아파서 괴롭다.

랜디 로즈의 기타 소리도 마찬가지다.

마음이 너무 아프고 아려지는데도, 멈출 수 없음은 ,그들의 기타소리가 내게 들려주던 그들만의 위로가 있었을 거다.

 

사람이 목놓아 우는 것보다 더 뜨거운 설움을 토해낸다. 기타의 그 떨림과 그 현란한 아픔은 내 마음을 오히려 다독여주었다.

 

게리 무어가 등장 했을 때 숨이 턱 멎는 듯 했다

기타 연주를 들려줄 땐 무엇으로 표현할 수 없는 벅찬 기분, 그동안 나의 정열을 바쳤던 그  시간들이 지나가면서 애잔한 마음까지 가세했다.

 

i love you more than you 'll ever know를연주 할 때의 게리 무어의 혼신의 힘을 다하던 연주.

천안함 사건을 위로한다면서 들려줬던 still got the blues의 기타 소리는서럽고 애닯아서,기타에도 혼이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게 했다.

 

마지막 연주 parisienne walkways를 연주할 땐 정말 너무 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이 노래를  늘 같이 들었던 친구

이 노래 들으면서 써내려갔던 일기장

그리고 그 일기장에  빼곡히 적혀있던 누군가가..

 

이 세상에 단 한 명, 내가 가지고 있던 나의 음악적인 감수성을 받아주고 이해해주었던 그 친구, 그래서 더 친구에게 의존적이 되어갔을 지도 모르겠다.

내 자신의 욕망을 누구에겐가 계속 인정받고 싶었고, 그 시선으로 내 욕망을 다시 한번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그 친구가 없었다면, 내 존재가 더 많이 흔들렸을지도 모른다.

 

 

수많은 시간들이 흘러서,그때 밤잠을 설칠만큼 고민했고,아팠던 감정들이   아물어서, 현재의 시간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지만, 이렇게 노래 한 곡으로 사람 맘 뒤흔들어 놓기도 한다.

 

어쩌면 젊은 날에 사람 때문에 힘들기도 하고, 위안이 되기도 했던 그 감정들의 연장선상에 지금도 있을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노래에 열광하는 게 아닐까.

 

 

게리무어의 공연은 여지껏 내가 봤던 공연 중에 최고인듯 싶다.

엑슬로스는즈는 너무 몸이 무뎌졌었고

밥 딜런은 관객과 전혀 소통이 안된 채 혼자 너무 진지했고

 

게리무어는 여전히 기타를 신들린 듯, 너무도 서럽게 아리게 연주를 잘 해내 있었고

그의 정열적이면서도, 진지한  표정도 너무 좋았다.

 

관객을 보면서 끊임없이 관객의 반응을 살피고, 배려하는 정성스런  태도, 그리고 자신이 연주하는 나라에 대한 최소한의 관심, 적지않은 나이임에도 믹 재거 못지 않은 에너지와 무대 장악능력 모두 다 만족스러웠다.

 

 

 

다만 아쉬웠던 것은 empty rooms still in love with you를 연주 안 해주었다는 거다

.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모르는 행복감과 충만감이 함께 한다.

일종의  스탕달 신드롬인듯 싶다.

 

아펜니노 산맥을 넘어오면서 르네상스의 도시 피렌체 가까이 오자 스탕달은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단테,다빈치, 미켈란젤로,마키아벨리, 갈릴레오 등의 위인이 살았던 도시에 발을 들여놓는 다는 것만으로도 황홀경에 빠진 것이다.

시내에 들어와 한 성당에서 벽화를 보고 난 후에는 그 자리에서 쓰러질 것만 같아 의자에 앉아 쉬어야만 했다고 전해진다.

 

 

흥분과 그리고 약간의 허탈감으로 잠이 쉽게 오지 않을 듯하다.

 

이렇게 황홀한 경험을 가능하게 해준 게리무어에게 어찌 감사의 말을 전해야 할지

 

살아있으면 다시 한번 볼 수 있으려나

 


(두울성시완 아트 록 감상회)

 

 

어제 게리 무어의 공연을 다녀와서 감정을 정리 하는 게 쉽지 않았다.

너무 흥분되고, 게리무어의 음악을 들었던 시절의 여러 가지 크고 작은 트라우마 들이 올라오면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새벽까지  몽롱한 상태로 있었고, 6 되기 전에 일어났다.

 

평생 한번 만나보고 싶던  사람을 만나니, 이렇게 감정을 추스릴 수가 없구나

이러다 정말 쓰러질 것  같다.

 

감동을 나누어 가질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했는데 , 아무도 없었다.

그 흥분되고 떨리던 가슴을, 너무나 좋아서 설움에 복받치던 그  두려운 마음을

이해못하고 이해가 안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내게 가질 그 유치한 감정이라는  것도 안다.

 

 

아침에 일어나서 오전 내내 게리무어의 연주를 들었다.

다시 눈물이 나온다.

오전 내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아침에 할 게 많았는데, 그저 멍하니 음악에 취해서, 어제 나의 하루를 돌아다 보았다.

하루 사이에 온 몸의 기운이 빠져나갔다.

 

미술 수업을 들어야 했기에 겨우 몸을 추스리고 수업에 갔다.

수업 시간 내내도 맘이 안정이 되지 않았다.

수업을 어떻게 들었는지 모르겠다.

 

오후에  대림 미술관에서 하는 성 시완의 아트 록 감상회를 갔다.

또 한 번 기절 하는 순간이다.

성 시완이다.

성 시완에 대해 난 너무 많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

여러 번 쓴 걸로 알고 있지만, 나는 음악의 대부분을 성시완과 영혁에게서 배웠다.

 

 

성시완은 처음 디제이 경연대회 우승자였다.

논리적이면서도 감성적인 그의 방송을 너무도 좋아했다.

 

고등학교 때 한동안 한참 좋아했던 ROSE  A TASTE OF NEPTUNE도 최초로 우리나라에 소개시켜준 장본인이다,

그 당시에는 판으로 발매가 되지 않아서 나는 그걸 백판으로 가지고 있다.

아마 나중에 정식으로 발매가 된 거 같다.

 

그 곡도 참 몽환적이면서 신비롭고, 나를 늘 꿈꾸게 하던, 나와 대화가 정말 잘 되던 곡 중의 하나이다.

 

늘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막상 이렇게 보니 너무도 반가웠다.

많이 변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여전히 음악에 대한 정열과 그에 관한 일을 하는 그를 보니, 그의 정열에, 자유로워 보이는 영혼에 감사했다.

 

 

음악에 대한 설명, 여전히 깔끔하고 지적이다.

YES URIAH HEEP의 연주 실황을 보여주었다,.

 

특히나 유라이어 힙의 1975년 도쿄 실황을 보니 또 다시 흥분 상태가 된다.

일본은 거의 동시대의 뮤지션의 공연 실황을 볼 수 있구나.

키보드와 보컬이 날 숨막히게 한다.

 

감상회 끝나고 나서  성시완씨에게 수줍게 싸인을 부탁했다.

나는 싸인 받을 사람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정성스럽게 싸인을 해주셨다.

아울러 ROSE의 음악도 잘 듣고 있노라고 말씀드렸다.

 

 

 

살아가면서 난 만나고 싶은 사람에 대한 꿈을 꾸면서 살아간다.

꿈이 꿈으로만 아니고 이렇게 하나 둘씩  이뤄질 때의, 격렬한 감정에 복받치는 , 행복한 그 느낌은 글로 표현이 잘 안된다.

 

 때론 감당이 안될만큼 흔들리기도 하고, 그 강렬한 감정 뒤에 나타나는 허탈한 마음까지 다독여야 하는 복잡한 과정을 극복해야 겠지만,

 

나는  내가 늘 이렇게 정신적이고 순수한 것에 몰두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산다.

그리고 이 순수함을 가장 큰 매력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만큼 고통스럽고 아프기도 하겠지만,직관을 통해 얻어내는 이 미묘한  영혼의  두드림을 너무도 사랑한다.

 

 

 

 

 

 

 

(세엣통의동 떠오르는 내 친구 )

 

통의동 류가헌 미술관 들어가는 골목길

 

 

 

 아 여긴 나 혼자 비밀의 장소인데 ..삼청동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골목길이에요. 서울이란 영화에서 박지윤이 두 팔 벌리고서 사진을 찍었더라구요.

 

류가헌 미술관-주로 사진전을 한다

 

 

십오년전인가삼청동을 처음 가보았을  때 느껴지던 편안함북적대지 않고 아늑한 느낌에 절로 미소가 지어지던,그러나 지금 삼청동은 예전의 그 느낌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주말이면 카메라 들고 다니는 인파들로 이젠 하나의 관광명소가 되어버린듯한 느낌이, 나를 또 다른 곳으로 밀어내는 것 같다. 그러다 발견한 곳이 통의동이다.

 

 

 좁은 골목길이 주는 안정감, 낮은 건물들, 아마도 어머니의  뱃속에서 느꼈던 완벽한 평화이리라. 이 지구상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한평생 찾아 헤메이는 그래서 유토피아라고 하는 그 이상향에 근접할까.

 

시간이 멈춘듯한 차분한 이 지역의 느낌은, 빡빡한 도시의 삶이 조금은 허무하고 초라해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또한 내가 지어낸 환상임을 알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통의동이 개발 바람에 밀려서 고층 아파트가 들어선다면, 더 많이 외로울 것 같다.

가끔씩 숨쉴 곳을 잃었다는 느낌에 

 

 

(네엣봄날의 영화들)

 

 

 

 

봄날 정신없이 영화를 본 거 같은데 가장 내 마음을 흔들어 놓은 영화들

 

 

비가많이 내리던 오후

an eudcation을 보고 걸어가던 길

 

 

봄비 내리던 날--그댄 봄비를 좋아하나요? 전 무지 좋아해요.

 

 

영화 내용이 주는 생각거리들보다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영국의 그림같이 편안하고  나즈막한 집들, 파리의 화려한 풍경들, 그리고 주인공이 라디오에서 나왔을 때 같이 따라 불렀던 파리의 하늘밑 노래가 인상에 남는다.

옥스퍼드 대학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하던 17세 소녀에게 나타난 30대 중반의 멋진 신사.

부모의 엄격한 통제에 염증을 느끼고 자신이 공부하는 목적이 분명하지도 않은채 공부를 죽어라 하던 소녀

그때 나타난 경제적으로 풍요해보이고, 자신을 아껴주고 자신의 모르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해주는 신사에게 빠져든다.

 

신사와 같이 재즈바도 가고 빠리 여행도 하고 경매에도 참가하고, 신기한 세상을 만나니 자신의 세계는  너무 고리타분하고 시시해보이기만 했으리라

어쩌면 공부를 해서 좋은 대학 가는 것이 이렇게 돈많고 배려심많은 남자를 만나기 위한 것이었으니,지금 만났으니 목적을 달성했다고 생각했을런지도 모른다

실제 소녀의 부모는 돈많고  신사로 보이는 그 남자와 연애를 하는 소녀를 말리지도 않는다

빠른 지름길이라 생각했을까

 

 

 

그러나 소녀가 빠른 길이라 생각했던 그 길은 사실상 너무나 위태롭고 부숴지기 쉬운 허망한 것이었음을 깨닫는데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신사의 정체는 예상했던 대로다.

 

영리한 소녀는 다시 마음을 추스리고 조금 늦었지만, 다시 자신의 길을 찾아 혼자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을 세워가야 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누군가의 유혹으로 잠시 길을 잃는다.

유혹은  이전까지의 나를 다른 곳으로, 지켜왔던 자아밖으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상으로, 다른 수준의 세계로 나를 데리고 간다.

 

천국으로 데려가는 듯 하다가 결국은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것.

 

그러나 어쩌면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의지보다, 실은 누군가의 계획대로 움직이는 자동인형처럼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그때 그 순간 그 길밖에 없었던 것처럼 살아가는 게 인생일런지도 모르겠다.

 

영화의 내용 자체가 주는 새로움이나 참신함은 없다.

다만, 주인공 소녀를 열연한 캐리 멀리건에게 눈이 간다.

 

  소녀의 흔들리는 불안함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 동경, 반항, 허영심등의 복잡한 감수성을 무리없이 잘 표현해냈다.

케이트 윈슬렛과 같은 연기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비소리 들으며 걷는 걸 좋아한다.

내 귓가엔 이미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이 들려온다.

 

 

(클로이---) 줄리엔 무어, 리암 니슨 , 아만다 사이프리드,아톰 에고이안 감독---

 

니체의 운명과 역사에서 삶의 의미와 목적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열정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했다.

평온한 일상에 그저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늘 상승하려는 의지로 살아가고 싶다.

 

영화도 평온한 나의 삶과 일상을  뒤집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그런  게 좋다,

 

실천적  가능성은 차치하고라도, 무언가가 꿈틀거리면서 살아 있는 존재임을 확인 시켜주는.

 

그런 면에서 클로이는 정말 한동안 나를 끊임없이 흔들어놓고, 괴롭혔다.

 

제목은 클로이지만클로이가 주인공이라기보다, 중년의 산부인과 의사 캐서린의 심리 묘사에 집중을 한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안정되어 보이는 40대 후반의 의사 캐서린.

잘 생기고 매너좋은 교수남편과, 약간은 반항적이지만,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지고 있는 아들을 둔 전형적인 중산층 주부이다.

 

겉으로 보기엔많은 것을 가진듯하나, 어딘지 모르게 내면은 공허하다.

그녀의 내면을 깊숙이 쳐다보고 인정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완벽한 평화의 세계다.

그러나 그녀의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감정은 , 매혹적인 젊은 여인 클로이를 만나면서 표면화된다.

 

처음에 그녀를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은 비천한 여인이라고 생각했겠지만, 만남을 계속하면서 클로이에게 받는 느낌에 당황한다.

그녀가 가진 매혹적이고 치명적인 아름다움, 자유로움, 당당한 자신만만함에 자신도 모르게 동경의 마음을 가지게 된다

.

클로이의 치명적인 거부할 수 없는 아름다운 이미지가 케서린에 욕망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전혀 자신과 다른 차원의 것들이라고, 밀어내고 싶겠지만, 마음 한구석 깊은 곳에서 클로이가 가진 지독한 매력에 빠져든다.

 

한편 클로이는 안정적이고 평화로워보이는 , 어딘가에 정착한 캐서린에게 동경의 마음을 품게 된다.

뛰어난 아름다움으로 모든 남자를 요리하면서 자유롭고 화려함을 누리고 사는듯 보이나 , 그녀 또한 마음 한곳의 허허로움을 어찌할 수 없다.

 

정처없이 떠돌던 마음을 어디에 붙들어 매고 싶었을까

구름처럼 떠도는 마음의 안식처로 캐서린에게 기대고 싶다.

 

자신의 욕망을 억압하고, 기존의 사회 질서나 테두리에 순종하고자 했던 캐서린은, 클로이와의 만남으로 인해 용기를 얻게 된다.

 

사회질서에 적응해서 잘  살아가던 삶 이외에 자신의 가장 내밀한 감정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자신의 잠들어 있는 욕망에 솔직하게 반응하면서, 둘 사이의 위험한 관계가 시작된다.

 

둘 사이의 욕망은 다 현실의 저편을 지향한다.

 욕망은 충족되지 않는다는 전제조건이 있다. 충족된 욕망은 이미 욕망이 아니다.

 

그래서 욕망이란, 현실 질서를 뛰어넘을 수밖에 없다.

현실 속에 욕망이란, 아무 것도 제공해 줄 수 없으리라.

 

그래서 급진적이고 그래서 위태롭다.

일반적인 시각에서 보면 옳다고는 할 수 없는

 이 영화는 상당히 자극적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안정적으로 보이는 사람이 누리는 기존의 여러가지 특혜나 , 선점한 것들에 대해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그러한 것들이 언제까지  당연할 수 있는지에 대한 , 질문에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욕망을 감춰두고  편안함에 의지하는 삶과

자신의 욕망에 충실함으로써 생겨나는 여러 가지 어려움들을 감수하면서 ,당신 속의 욕망을 실현해 나갈 것인가

 

라캉이 당신은 당신 속에 있는 욕망에 일치하여 행동하였는가라고 묻는다면

내 안의 섬세함은  이렇게 , 도덕주의적인 삶 너머로  그렇게 달려갔노라고,

 살아있는 공간으로

어쩌면 욕망이 실존이었노라고

 

그렇게 캐서린은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의 결핍에 대해 건네던 말들.

자신의 상처에게 건네던 말들

결핍을 제거하려던 움직임들

 

사랑이란 이름으로 채워넣으려고 하던 그 몸짓들이 합일이나 실현되는 그 순간

 

어쩌면 누군가에 의해 결코 채워질 수 없는 것임을 느끼게 될 지도

한바탕 꿈을 꾼 것처럼 멀게 느껴질지도

결핍의 차원을 존속시키위한  다른 무언가가  존재해야 한다고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주하던 그 죽음 충동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해석하고 조절해야하는지는 전적으로 자신의 견해에 따르기를, 타인의 시선이나 도덕적인 당위성이 아닌.

 

 자신의 세계를 뛰어넘어 ,미지의 세계를 발견하고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는 사람은 어쩌면 나자신 뿐일지도 모른다.

 

다만, 그 타인의 말걸기에  뛰어들음으로 해서, 자신의 테두리를 벗어나, 타인의 멧세지가 스며들던 그 느낌

 

그건 아마도 욕망이란  삶이란 행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다른 이야기였을 것이다.

 

줄리엔 무어의 연기는 연기가 아닌듯, 그녀 자체가 캐서린이 된 듯한 완벽한 연기를  한 것 같다.

안정되어 보이지만, 어딘가 불안하고, 애처로운 여인의 내면을 아주 잘 소화해 내었으며

새롭게 떠오르는 아만다 사이프리드의 연기 또한 만만치 않다.

얼굴의 아름다움 뿐 아니라 도발적이면서도 당돌하고 위험한 열정을 가지고 사는 고혹적인 여인을 잘 표현해 냈다.

맘마미아에서 보여 준 발랄함과 디어존에서의 그 지고지순한 청순함과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팜므파탈의 역할까지 다양한 캐릭터를 잘 잡아낸다.

 

 (다섯-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연극, 동숭 아트홀,배종옥.이 석준 )

 

 

블량슈의 욕망이 날 너무도 슬프게 한다.

낯선이의 친절에 의지해서 살아왔다는 블량슈의 고백이 가슴을 친다.

 

블랑슈에게 있어 욕망이란 그야말로 집착이나 탐욕이라기 보다는, 라캉이 말한대로 존재의 결여에서 비롯된 소외의 표현이었다.

 

지난 과거를 완벽히 아름다운 시간이라 가정하고, 그것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향수와 환상을  가지는 점은 영화 클로이에서 캐서린과 비슷하다.

현실 속에서 자신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좌절을 겪을 수밖에 없는 불가능한 것에 대한 갈망이 그녀의 비극이다.

 

자신이 적극적으로 그 환경을 개선시킬 힘도 의지도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켜줄 누군가가 필요했을 것이다.

 

대상으로 채워질 수 없다는 것은 누군들 인정하고 싶지 않는 아픔이리라.

 

그녀에게 욕망이란 어쩌면 ,무의식적인 영역, 속성으로서가 아니라, 존재하기 위한 살기위한 몸부림이었던 것 같다.

 

우리들의 삶이란 충족되지 못하는 욕망들이 순환되는 불완전한 체계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녀의 삶이  , 아니 우리네 삶이 더 애처롭고 불쌍했는지 모르겠다.

 

(여섯- 이 정은 선생님 강의

-나는 왜 인정받고 싶어하는가)

 

살림에서 나온 얇은 책들이지만 선생님의 책 두권이 내게 참 많은 위로가 되었다.

사랑의 철학과 나는 왜 인정받고싶어하는가였다.

쓰신 글을 정말 많이도 되풀이해서 읽었던 것 같다.

인정 욕구에서 늘 자유롭지 못한 내게 , 그렇게 때문에 인간이라고, 나약한 인간이라고 그렇게 곁에서 말씀해주시는듯했다.

어쩌면 내 고통의 많은 부분인듯한,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이 나뿐만이 아니라는 사실하나만으로 힘이 된다.

사랑을 필요로 하는 나약한 심성에 대해서도 심히 불만스럽지만, 그 또한 나약한 인간임을 인정하고, 결핍을 메꾸려는 하나의 노력의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인생에서 바라고 채우는 가장 중요한 과정은 전적으로 자신이어야 하겠지만. 때로는 누구에겐가 구원의 손을 요청한다 해도, 요청하고 싶어진다는 게 그게 삶일지도 모르겠다.

 

(일곱강익중 전시회

 

금호 미술관--한동안 빠져있었던 강익중 작품

 )

 

 

  익중의 작품에 한동안 매료되어서 거의 매일 에비뉴엘 갤러리를 갔었고, 흥국 생명 빌딩에도  작품 구경하러 자주 갔었다.

그냥 내겐 느낌이 좋은 작품이다.

우울하게 마음이 가라앉은 날 가서 보고오면, 기분이 조금은 들떠지는 느낌이다.

 

 

오랜만에 그의 전시회를 보니, 너무도 반가웠다.

그렇게 좋아하던 작품도 시간이 흐르면 , 다른 작품에게 자리를 내준다.

그러다 이렇게  또 만나면 즐겁다.

 

그렇게 흘러간다.

좋아했던 것들도

시간 앞에선..

 

 

 

 

주절거림

 

 

  벚꽃나무들이 조심스럽게 올라왔던 게 엊그제 같았는데,바로 내 눈앞에서 벚꽃이 날리는 것을 힘없이 바라봐야 했다.

 

꽃이 지던 자리에서,애지중지 아끼던 것을 빼앗겨 버린 아이처럼 아파지던 마음들

터져버린 자리에서 ,그리워서 맴돌던 마음들

 

바람에 날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꽃잎들, 여기저기 흩여져 있는 것이 꽃뿐이었을까

사랑을 아는 모든 모든 마음들은 꽃처럼 흩어진다.

 

흐드러지게 피어난 꽃들을 더 맘껏 예뻐해주지 못한 이유는 이렇게 아름다운 봄꽃들도 바삐 내 곁을 반드시 떠날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 중대한 비밀을 알아버린 순간, 혹시나 그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 순간의 허전함에 대비하기 위해 적당한 물리적 거리를 찾아내려고 바둥댔다.

 

그러나  그 절정의 순강에 꼭 차오르던 충만감을 놓치고 싶지도 않았으리라

 

이미 꽃잎이 저버린 이 순간, 더 애틋한 마음으로 사랑했다고 말해 주고 싶다.

 

내 곁을 떠나가는 허망함을 깨닫게 되더라도, 어쩔 수 없이 또 열정적으로 꽃들을 바라볼 수 밖에 없으리란 것도 안다.

 

봄이 저무는 느낌은 꽃이 지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시간이 좀 더 흘러서 내가 성숙해지고 단단해진다면, 꽃들이 지는 거에 대해서 담담할 수 있을까.

그게 자연의 이치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수 있는 

봄이 오고, 봄이 가고, 어쨌거나 이제는 그런 거에 상처받지 않았음 좋겠다.

 

그런데 아마도 꽃들이 내 곁을 떠나가는 아픔에 몸서리쳐도, 내년에 아마도 또 그 녀석들에 대한 내 열정과 사랑의 열망은 버리지 않을 것임을 안다.

 

 

어쩌면 꽃들에 대한 사랑, 봄에 대한 사랑은 내 자신에 대한 열정과 열망 에 대한 사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출처 : 달팽이의 집
글쓴이 : 페르소나 벗기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