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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해석은 실재를 겨냥한다

볼륨One Summer Night - 이소은 & 김형중 - 진추하음악을 들으려면원본보기를 클릭해주세요.

해석은 그녀의 사고와 감정 사이에 상실된 연결 고리를 복고시켜주는 효과를 가져왔다. 내 해석은 , 그때까지는 전혀 표현되지 않았던 어떤 것을 언어화했다는 점에서(실재를 명중시킨) 것이다.

라캉에 따르면 이러한 실재는 분석을 통해서 상징화되어야 한다. 실재는 언어화되어야 하고,기표화되어야한다. 자크 알랭 밀레의 말처럼,분석은 점진적으로 실재를 상징계로 유출시키는 과정이다. 실재를 겨냥하는 해석은 분석 주체의 욕망을 고착시킨어떤 것을 그 스스로 언어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라캉과 정신의학 중에서..

이 글의 제목을 설명한 라캉의 글을 옮겨봤습니다. 저 글 중에 해석 , 글 쓰기로 바꾸니 완벽하게 저의 맘과 맞아떨어지더군요.—

  저는 이 세상의 모든 답을 라캉이 다 알고 있는 것 같이 그에게 열광합니다.하루에 한번씩은 그의 책을 훑어보니까요. 아 근데 돌아서면 까먹고 하네요. 내 사랑 라캉

 

 

 

 

 

 

이야기 하나 ---길상사 나들이

내 마음 속에 서서히 가을이 오고 있다.

 

내게 가을은 브람스, 기형도 ,백석, 혜린,가을날의 동화, 바르셀로나의 아찔했던 햇빛, 스트롭스의 autumn,..그리고.. 보들레르가 사랑했던 파아란 하늘과 구름

 

만날 수 있는 것부터 만나자.

백석 시인

 

처음엔 잘 생긴 외모에 그 날카로운 콧날에 반해서, 많이도 존경하는 신경림 시인이 그렇게도 좋아하는 분이 백석이라니,, (내가 좋아하는 분은 그분이 좋아하는 것 사소한 것 까지 따라하고 싶다. )

그러다가 그의 시를 읽고는 아 이런 사람이니 자야가 한평생 그리워하고 사랑했겠구나.

나라도 그리하였을까..?

 

 

백석과 자야의 애절한  못다 핀 사랑 이야기

자야가 대원각을 운영하며 평생 모은 돈을 법정 스님께 시주하여서 탄생한 곳이 길상사라고 한다.

 

 

백석과 자야가 못이룬 사랑의 느낌이 들릴 듯 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영원한 사랑을 믿느냐고 하면 고개를 젓지않을까.

나 또한 심리적인 방어선으로 영원한 것은 없다고 믿는 편이 세상 살아가는데 아주 편리하고 유용한 방어기제이다.

영원한 사랑이 없다는 것은 진실한 생각이라기 보다는 그렇게 믿는 것이 편해서 방어하는 방식일 뿐이다.

어딘가엔 사랑을 믿지만 , 알랭드 보통의 말처럼 믿어도 되는 상황이 오기 전엔 안믿는 척 한다.

 

이런 생각에 물음표를 던져주는 진한 사랑은 자야의  백석에게 향한 사랑이다.

월북해서 못보는 사랑을 그렇게 오랜 동안 올곧게 간직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소중한 대상에게 향한 지울 수 없는  그리움 어찌 달랬을까

자신의 존재 한 가운데 맺힌 그 슬픔

순간적으로 누구에겐가 홀리고, 한동안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 같이 있음이 행복임을 느낄 순 있으나 부재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사랑이 가능하다는 게 정말 신기하고도 부럽다.

누군가를 향한 갈망과, 그 갈망을 없애고자 하는 마음들이 쉬웠다.

 

 

상호간에 사랑의 쌍방향 소통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욕망이 더 커졌을까

몽테뉴가 말했던 사랑에는 우리를 피해서 달아나는 것을 미친듯이 쫓아가는 욕망밖에 없다

 

고 하더니..

쾌락원칙이 부과한 한계선을 넘어  금지된 대상을 지향하는 것이나

부재하는 사람을 향한 욕망도 다 내가 보기엔 죽음 충동이다.

 

부재하지 않는 것을  욕망하는 것

도덕으로 재단할 수 없는 나의 삶 저 너머에 있다.

 

비오는 날의 길상사의 모습에 반해서 요즘 틈만 나면 길상사에 간다.

 

 

 

 

 

 

이야기 둘영화 좋아

 

 

남들에게 내가 본 영화에 대해선 전혀 말을 안하는 편이다.

어쩌다가 말을 하면 왜그리 지루한 영화? 만 보는지에 대해 의아해한다.

지루한 영화만 보는 게 아니라, 내가 보고 싶은 영화만 골라서 보는 것이다.

흥행과 상관없이 감독이나 내용이나,주인공이 맘에 들거나.꼼꼼히 살펴보고 보는 편이다.

즐겁고 유쾌한 영화도 좋지만,내가 더 선호하는 영화는 인간의 내면을 섬세하게 다룬 영화들, 내가 몰랐던 세계를 알게 해주는 상상력 가득한 영화들,사물을 다른 시각에 볼 수 있게 폭넓은 시선을 확보하는데 도움을 주는 영화들,배경이나 음악이 좋은 영화들,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면 내용에 상관없이 무조건 보는 경우도 있고..

 

 

 

(바더 마인 호프) --

 

서독의 68항쟁 가운데 생겨난 서독 적군파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이다.

보고나서 머리가 아파오고 약간의 공포감도 들어왔으며 답답하기도 하고,무척 혼란스런 영화다.

바더 마인호프 그룹은 서독에서  전제군주인 팔레비 부부의 독일 반대 집회에서 대학생이 총살되면서 생겨난다.

바더와 마인호프는 주축이 되었던 사람들의 이름이다.

반전주의,반제국주의, 평등을 기치로 처음엔 순수한 이상으로 자신들의 꿈을 실현하려고 하다가 나중에는  곳곳에서  비행기테러,백화점 테러를 하게 된다.

 

이들이 주장하는 것들이나 노선은 분명 공감하고 찬성해야 할 것이 많지만, 방법론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 말고는 없었을까에 대해 계속 생각을 해봤는데,답이 안나온다.

다른 방법이 있었다면 그렇게 했겠지..

 

반드시 실현을 해야 할 목표를 위해선, 적은 희생은 정당화 할 수 있는 건지 좁은 소견으론 분간이 되지않는다.

 

그 당시 서독의 지배 계급에 대한 독선과 횡포에 대해 저항하고 비판하는 용기에 대해선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비판적.실천적인 사람들이 없었다면 지금도 얼마나 암흑 세계에 있었을는지 모른다.

 

생존해 있는 대표적인 비판적인 지식인 가운데 한 사람인 촘스키가 한 말이 있다.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는 기사로 뉴욕 타임즈에 게재했다.

 

우리가  지금 단호하게 행동하지 않는다면 훗날 역사가 우릴 엄하게 판단할 것으로 우리는 믿는다.”

 

 

이러한 저항성과 역동성이 없었더라면 아직도 도처에 불평등함, 비인간화,자유의 억압이 넘쳐나고 있을지 모른다.

 

지배자의 입장에서는 항상 약한 타자를 배려하는 이해하려는 움직임은 늘 필요하다.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에 나오는 말로 글을 마무리 하려 한다.

 

타인의 고통을 단지 이미지와 스펙터클(볼거리)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이를 두 눈으로 응시하고 부조리한 현실에 개입하려는 자세가 요구된다.

 

부조리한 상황에 개입하려는 의지,

 

세계를 인식하는 것

타자를 이해하는 것

삶에 대한 인식,인식으로 인한 변화 그리고 저항,실천의 용기..

 

 

(디스 이즈 잉글랜드)

 

1980년대 영국이 대처 수상이 집권하고 있을 때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값싼 노동력을 제공받으면서,일자리를 잃었다고 생각하는 영국내의 젊은 이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스킨 헤드들의 이야기가 이 영화의 토대이다.

 

실제로 스킨 헤드의 일원이었다는 세인 메도스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섞어져 있다고 한다.

1983년 학교에서 친구들에서 왕따를 당하던 12살 소년 숀은 집으로 가다가 20대 초반 정도의 청년들로 구성된 우디 패거리를 만나게 된다.

 

자신을  따뜻하게 품어주는 그들에게서 편안함을 얻게 된  숀은 ,점점 그 스킨 헤드 집단의 일원으로 성장해 간다. 그 배경에는 숀의 아버지가 포틀랜드 전투에서 전사했다는 사실이 한몪 했을 것이다.

 

점점 더 그 집단은 폭력적으로 자신들의 광기를 드러내며, 자신들의 민족적인 가치를 내세우며, 타민족에 대한 배타적인 감정을 표현한다.

 

파키스탄 이민자의 가게에 들어가 무차별 폭력을 하고, 같은 스킨 헤드 집단이지만,유색 인종이라는 이유만으로 엄청남 폭력을 행사한다.

 

이 영화를 통해서 영국이라는 나라가 80년대의 경제,사회적인 어려움,유색 인종에 대한 강한 거부감, 가진 사람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공격적인 태도 등을 볼 수 있었다.

 

 

유색 인종에 대한 강한 거부감은 실제로 내가 스코틀랜드에 가서 호되게 경험했다.

 

런던은 워낙 다양한 인종들이 있어서인지, 관광객에 대해 특별한 시선을 의식하지 못했는데,스코틀랜드에선 밤에 버스 정류장에 서있을 때 청년들이 집단으로 주위를 뱅뱅 돌며 야릇한 시선을 보냈는데 지금 생각해도 섬뜩하다. 아름다운 경치도 생각 안날만큼 무서운 눈빛이다.

이방인에 대한 경계심과, 우월주의,뭔지 모를 불안감들이 읽히는 순간이었다.

 

 

그들이 주장하는 자신들의 우월성을 표현하는 방법이 참 안쓰러웠다.

내면이 약한 사람은  자신의 존재의 우월성을 증명하기 위해서 자신보다 약하다고 생각하는 타자를 끊임없이 괴롭히거나 곤경에 빠뜨리면서,존재감을 확보하는 법이다.

식민지배자들은 자신들의 권위와 통치에 대한 정당화의 방법으로 열등한 타자가 늘 필요했듯이..

 

이 영화에서 스킨 헤드의 보스격인 콤보의 내면의 심적인 고뇌와 처한 현실이 그대로 읽힌다.

겉으로 드러난 폭력적인 양상은 두둔할 마음은 없지만, 그가 왜 그렇게 밖에 자신을 던질 수밖에 없었는지는 이해가 간다.

 

폭력적 행동 뒤에 감춰진 인간의 나약한 인간성,상처받고 보호받지 못하는 내면들, 자신의 내면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자신의 울분을 타인에게 표출함으로써 위안을 받고자 하는마음.

 

대부분의 사람들의 거친 행동 뒤에는 숨겨진 아픈 원인과 상처가 있는 법이다. 그렇다고 그들의 죄가 무마되지는 않겠지만, 자신들의 불만을 제대로 파악하고, 모두에게 상처가 되지않는 쪽으로 행동할 수 없을까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볼거리 들을 거리가 많은 영화였다.

롤업  스키니 진을 입은  간지남들,그리고 스모키 메이크업으로 강렬하게 자신을 표현한 소녀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충분한 눈요기가 되었고, 음악이 참 좋았다.

 

12살 숀의 역할을 한 터머스 터구스-상처받은 한 소년의 내면 연기를 너무 잘 표현했다.

 

참고로 이 영화를 트레인스포팅과 비교하는데 개인적으로 그것에는 조금 못미친다고 생각한다. 그 영화에서 이완 맥그리거 할 말을 잃게 한다. 아무 말 못하겠다.

 

 

 

(요시노 이발관)

 

 

 

일본의 작은 해안가 마을,평온하고 행복해보이는 마을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마을엔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이라며,소년들의 머리가 하나같이 바가지 머리 스타일이다.

모두 그 마을의 요시노 이발관에서 자른 것으로 소년들은 이 머리에 대해 별다른 생각없이 고수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머리가 촌스럽고, 왜 다 똑 같은 형태의 머리를 해야하는지에 대해 반감을 갖기 시작한 건 동경에서 내려온 사카가미 때문이다.

사카가미의 세련된 머리 스타일에 여자아이들이 관심과 호기심을 보이고 인기가 급증한다.

 

 

 

 이 영화는 전통을 지키려는 요시노 이발관의 아주머니와 그것에 대항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려는 아이들과의 투쟁을 그려내고 있다.

상당히 급진적인 투쟁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안이었음에도 서로를 이해하고 타협하는 과정 속에서 격하지않게 잔잔하게 조율해 나간다.

대결 사안 자체가 아주 심각한 것이 아니었는데도, 보는 내내 빨리 해방되길,얼마나 열심히 응원했는지 모른다.

 

머리 스타일,옷 입는 스타일은 한 인간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구현하는 데 아주 중요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정한 획일화에 갇히게 되면 사고도 갇힌다.

자신을 제대로 표현하는데,자기의 생각을 표현하는데도  항상 자신이 없고,의심하고 회의하게 된다.

자신의 내면을 표현할 하나의 귀중한 기회인데 그게 누군가의 음모든,사회적인 압력에 의해서 제재가 가해진다면 얼마나 답답한가

 

 

나 같은 경우는 내가 입는 옷이나,액세서리들이 내 자신의 성향을 최대한 표현해주고 있기 때문에 만약 저런 제재가 있다면 아마 제 명에 못살 것이다.

 

보수를 고집하는 나름의 정당한 이유도 있을 것이고, 정치적인,자기 것을 지키기 위한 힘겨운 몸부림도 있을 테고, 지금보다는 나아질 수 있다는 기대로 하는 새로운 시도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자신의 생각만이 진리라는 환상은 다른 생각을 하고있는 사람을 적으로 규정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진리를 실현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데서 비극이 발생한다.

 

둘 사이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방법 중에서 정신치료 요법이 있던데 나름 괜찮은 방법인듯 싶다.

자신을 분석하고, 행동 수정을 하려는 노력으로 합리적인 해결책이 가능하다는 얘기이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이 부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싶다.

 

(세비지 그레이스)2008,톰 칼린 감독,쥴리안 무어,에디 레드메인,브룩스 베이클랜드

 

너무나 세밀하게 인간의 욕망에 천착하고,그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영화는 실은 보는내내 마음은 불편하다.

 

 

내용을 거의 알고서 보니까 아무래도 그들의 심리 부분을 더 유심히 살피면서 보았다.

 

이 영화는 1972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살인 사건중의 하나인 바바라 살해 사건을 다룬 내용이다.

 

범인이 친아들이고,이들이 최초로 합성수지를 발명한 미국의 명문가중 하나인 가문을 배경으로 해서 벌어진 일이라서 더욱 흥미롭다.

 

미모를 발판으로 상류 사회 진출에 성공한 배우지망생,매력적인 바바라는 남편의 무시와 무관심 속에 방황하게 되고 그의 아들 안토니에게 점점 많은 것을 의지하게 된다.

 

결정적으로 그들의 내면이 더 황폐화되게 된 배경에는 아버지 부룩스가 아들의 여자친구와 살림을 차리게 되면서 일 것이다. 아버지에게서,남편에게서 버림받은 가여운 영혼들은 서로를 더욱 더 의지하게 된다.

서로를 잘 이해하고 의지하게 되면서 모자 관계 이상의 애틋한 유대관계를 형성한다

 

이 영화는 상류층을 배경으로,근친상간,존속살해와 같은 충격적인 내용들이지만 , 영화의 내용을 따라가다보면, 충격적 내용 자체를 벌인 사람들의 심리가 잘 묘사되어 있어서,저런 죽일놈,,이란 욕은 나오진 않는다.

 

바바라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신의 상황도 얼핏 이해가 된다.

결혼을 통해서 얻어진 화려한 부와 명예를 벗어던졌다면, 저런 최악의 불행한 사태는 벗어날 수도 있었겠지만,,돈이 주는 화려함을 맛보았다면, 쉽지않을 선택이리라.

그 안에서 소심하게 일탈과 퇴폐적인 행동들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고 싶었던 그 맘도 이해가 되고

자신의 문제를 진실로 인식하게 되면  완벽하게 바로 고쳐질 수 있다는 건 환상일지도 모른다.

 

안토니의  행동이 그렇게 파국으로 치달은 이유는 더 쉽게 이해가 간다.

 

(불행한 상태에 있거나 걱정많은 엄마에게 자라난 아이는 자신이 사랑을 받고 있다는 확신이 없다. 아이는 엄마가 자신이 아닌 다른 이유로 슬퍼할 수 있다는 걸 이해 못한다.

아이는  엄마의 마음 상태에 대해 책임을 느끼고 오직 자기만이 엄마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엄마가  필요로 하는 것을 자기가 채워줄 수 없음을 절감하면 죄책감을 느낀다.

역설적으로 엄마와 자신을 분리하지 못한다.—욕망의 심리학 중에서)

 

엄마의 외로움과 근심은 아들과 적정한 거리를 두는데 실패했다.

원하는 만큼의 안정적인 사랑을 받지 못한 아들은 분리가 두려웠으며 그래서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자신감의 결여다.

인간이 타인과 가장 적당한 물리적 거리가 무너졌을 때 발생하는 문제가 극단으로 나타난 문제가 아닐까 싶다.

 

자기정체성은 최적의 거리가 제공되었을 때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얽히고 설킨 관계가 주는 비극은 충분히 예견되어진다.

 

그외에 내가 너무 좋아하는 오다기리 죠와 이병헌이 나온다고 본 영화들

플라스틱 시티와 지아이조.

지아이조의 내용은 좀 그랬지만,이 병헌의 멋진 모습을 본 것만으로 기분 좋았으며

플라스틱 시티는 참 난해하다.

 

 

오다기리죠,완벽한 신체 비율,저 날카로운 콧날, 아무렇게나 걸친듯한 옷차림도 참 멋지고 자유로워보인다. ㅎㅎ

 

 

 

늘 궁금하기만 한 브라질의 모습과 음악..아비정전의 음울한 느낌이 가득한 영화이다.

 

 

이야기 셋---국악으로 듣는 세상의 모든 음악

 

 

국악을 좋아하는 동생의 영향으로 국악 공연을 몇 군데 따라다니고 있다.

거의 모든 음악 장르를 다  좋아하지만,국악은 좀 지루하고 따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라디오에서 음악 듣다가 국악 나오면 다른 채널로 꼭 돌리곤 한다.

 

그런데 요즘 국악 공연은 현대적인 느낌으로 편곡을 하고,기타와 바이올린,재즈 가수까지 협연의 형태로 이루어지니 지루할 틈을 주지않는다.

 

이번 공연은 국악으로 듣는 팝송,국악으로 듣는 클래식,국악으로 듣는 재즈등 다양한 시도를 했다. 모든 전곡은kbs관현악 지휘자 이준호씨가 편곡한 걸로 알고 있다.

이 분 은근히 카리스마 있는데다가 참 섬세하신 분 같다.

가끔씩 귀여운 미소도 보여주신다.

 

국악으로 듣는 팝송-stairway to heaven을 가야금 사중주단 여울과 관현악단의 협연으로 연주를 했다.

stairway to heaven은 레드 제플린의 말이 필요없는 명곡아닌가.

레드 제플린의 곡 가운데 이렇도록 서정성과 강한 느낌을 가진 곡이 없을 것이다.

로버트 플랜트의 목소리가 유난히 더 빛이났던 곡.

로보트 플랜트는 말이 필요없다. 프레디 머큐리와 비교되는 가창력.

개인적으로 누가 더 좋냐고 물어본다면,난 로버트 플랜트..

중학교 때 로버트 플랜트의 금발 머리가 빛나던 젊은 시절의 사진을 월간팝송에서 보고,그의 팬이 되어버렸다.

폭발적이면서도 아련한 향수가 가득한 노래를 국악으로도 이렇게 표현하다니,국악이 이런 느낌까지 잡아내다니..

 

Children of sanchez, 척멘지오니의 플루겔 혼 연주로 알려져있는 명곡이다.

척 맨지오니 공연에 직접 가서 받았던 그 황홀한 느낌 못지않은 느낌이 들었다.

태평소 연주자 김경아의 혼신의 힘을 다한 연주로 거친듯한 태평소 음색이 부드럽고도 정열적인 느낌으로 태어난다.

태평소와 단소도 너무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단소의 심금을 울리는 소리,태평소의 가슴을 찌르는듯한 날카롭고도 시적인 느낌

 

Children of sanchez ,노래 자체도 명곡이고 편곡도 너무 뛰어나고 연주도 너무 잘 해서 야채가 깔끔하게 어우러진 비빔을 개운하게 먹는 기분.

 

타이스의 명상곡과 림스키 코르샤코프의 러시아 환상곡을 바이올린 연주자와 같이 협연했는데, 바이올린과도 참 잘 어우러진다.

그러고 보면 ,세련된 편곡이 있다면 어느 악기랑도 더 어울릴 수 있는 게 국악인 것 같다.

 

마지막엔 재즈 가수 웅산이 나왔다.

웅산의 호소력있는 음색으로,사설난봉가 ,summer time,take five를 불렀다

평소보고 싶던 웅산의 노래를 직접 들으니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횡재한 기분

tv에서 볼 때의 그 자신만만하고 여유있는 느낌,그대로다.

 

하루 빨리 백수가 되어서 좋아하는  이렇게 음악 실컷 듣고, 음악회 다니고, 좋아하는 책 하루 종일 보고, 쇼핑 실컷 하고, 영화 보고,  미술관 돌아다니며,못가 본 나라들 돌아다니며. ㅎㅎ 그중에 쇼핑과 해외  마구 돌아다니는 것은 포기해야 하기에 아직도 이러고 있다.

 

 

이야기 넷 --마릴린 먼로전

마릴린 먼로가 죽기 6주전에 찍었다는 사진전을 보러 갔다.

 

 

 

 

 

 

영화 속에서 만났던 그녀의 화려하고 유혹적인 모습들과는 달리 사진을 통해 본 그녀의 모습은 너무 순수해보이고 외로워보이고 슬퍼보이고 ,아파보이기도 한.. 그녀의 내면의 쓸쓸함이 그대로 느껴진다.

 

그녀가 가졌을 예민함과 섬세함, 여린 마음들을 그 경지까지 끌어올려 승화시키기엔 얼마나 많은 인내와 고독이 있었을까.

 

오드리 햅번의 고상함을 추켜 세워주면서도,마릴린 먼로는 속으로 좋아하면서도,짐짓 아닌체 하며 은근 그녀를 얼마나 무시하고 상처를 주었던가.

얼마나 많은 이미지들이 실재에 가려서 신음하고 있는가

우리가 어설프게 알고 있는 그 이미지에 기대어서 그녀를 완벽하게 안다고 믿지 않았나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실재의 그 모습 사이의 간극은 ,누구든 벼랑 끝으로 몰 수 있다.

우린 그렇게 작년에 최 진실을 그렇게 허망하게 보내버렸다.

 

 

누군가를 혼자서 다 안다고 생각하고 심지어는 그 이미지만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하며,실제의 모습은 안중에도 없고, 실제의 그 깊이를 알고 싶지도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먼로는 뭐라고 말하고 싶었을까

 

 

마릴린을 찍는 일은 마치 빛을 찍는 것과 같았다.

투명한 누드,아무런 의상 없이

그녀는 나의 것이다.전적으로 나의 것이다.—버트 스턴

 

 

투명한 누드 속에서 투명한 슬픔,누드로도 그렇게 아련한 느낌을 줄 수가 있구나.

 

 

나만큼은 겉으로 드러나는 그 허상의 이미지  뒤에, 상대의 본모습과 그 사람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기를 원한다.

 

당신은  내 곁에 현재 모습 그대로 있기를 바란다. 해석이 필요하지 않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면 더욱 더..

누군가를 잃을 까봐 두려워하지 말고..

 

이야기 다섯-

 

여름이 되면 생각나는 노래 중의 하나이다.

보통은 노래를 좋아하면, 그 노래가 좋아서이기도 하지만어떤 한 순간의 추억까지  보태지면 더 좋아지게  되는 것 같다.

이 노래는 몇 십년전 중학교 교실로 나를 데리고 간다.

 

중학교 1학년 때 한참 팝송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던 그때

난 팝송을 애들에게 가르쳐주곤 했다.

영어도 잘 못하면서 그 당시 월간팝송(전영혁씨가 편집장이었을 걸) 을 보면서 팝송 공부를 하곤했다.

수학 시간학생들에게 자습 하라고 하고 선생님은  항상 교탁에서 비듬을 털고 계시거나, 졸고 계시곤 했다.

 그날은 아마도 졸고 계셨던 듯.

내 짝이었던 친구와 요 노래를 공부하고 있었다.

음악에 취해서 나도 모르게 크게 부르고 말았다.

잠에서 깨어난 선생님께서 교실 밖으로 나가라고 해서 키득키득 거리며 복도에 나가서 벌을 받았던 즐거운 추억.

 

벌을 받으면서도 뭐가 그리 신나던지,

 

노래를 같이 부르던 그 친구

지금도 가끔 그 얘기 하면서 웃는다.

 

그저께 밤 한강을 산책하면서 라디오를 들었는데 그때 이 노래가 나왔다.

갑자기 가슴이 탁 막힌다.

 

노래 한 곡으로도 깔깔거리며 좋았던 그 소녀가 몇 십년 지난 뒤에도 여전히 노래에 취해 흥얼거리며 좋아할 수 있음이 너무 감사하다.

감성이 여전히 그대로인 것이  신이 내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이다.

울 아빠에게 받은 가장 귀한 선물


주절거림너무나 아픈,미해결의 인정 욕구들..~

 

 

휴가 시즌이다.

대부분의 휴가 시즌에 해외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나는 여러 친구들과 다양하게 휴가를 다녀왔었다.

대학친구들과, 중학교 친구들,중고등학교 때 친구 단 둘이서, 전에 근무했던 학교 선생들이랑..

제일 문제가 없고 무난하게 다녀온 여행은 학교 선생들이랑 다녀왔을 때다.

많은 숫자가 갔음에도 그 흔한 다툼없이 아주 즐거웠다.

서로 적당히 친한 관계였기 때문에 배려가 넘쳐났고,  잘 보이고 싶다는 욕망들이,개인의 치사하고 옹졸한 욕망을 잠재웠다.

적당한 심리적 안전 거리감이 완벽하게 지켜진 베스트 여행이었다.

 

제일 문제가 되었던 여행은 중학교 때 친구들과의 여행이었다.

-- 싱가폴 빈탄 여행

세 친구의 성향이  너무 달랐다는 게 문제다.

나를 중심으로 양쪽이 친해지게 된 관계인데.. 사실 객관적으로 어울리기 어려운 조합이다.

중학교 때  공부를 제법 한다는 이유로  친해졌다.

한번도 1등을 놓치지 않았던 k.

발표력 뛰어나고 글 솜씨 뛰어나고 뚜렷한 이목구비에 자신을 드러내기 좋아하고,자신만만 당당한 친구

P,자신은 드러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워낙 이쁜 얼굴과 총명함으로 들어오는 선생님마다 예뻐했던, 성격이 온화하고 잘 웃고 애교가 넘쳐서 보는 사람마다 무장해제다.

본인,그 당시는 굉장히 새침하지만 워낙  농담을 잘 해서 둘 사이를 부드럽게 연결시켰다.

본인은 아마도 둘 사이의 중간 성향에 속한 듯 보였다.

사실 머리로는 그 k양을 동경했지만, 실제 행동에 있어서는 p양과 더 잘 맞았던 것 같다.

k양은 고향이 부산인데,공부를 잘 해서 서울로 할머니댁에 유학온 케이스,그 어린 나이에도 죽도록 공부에 목숨 걸었던 걸로 기억한다.

p양과 나는 공부 이외에도 팝송이며, 영화, 소설책, 가수들까지 다양한 관심을 보이며 재밌게 여유있는 학창 생활을 만끽했다.

 

대학 4년 내내k양은 운동권에 몸담고 있었으며,p양과 나는 이쪽저쪽에 다양한 관심을 보이며 느긋하게 보냈다.

 

중학교 졸업 후에 몇 십년만에 휴가 날짜를 맞춰서 빈탄을 가기로 했다.

가는 목적이 좀 달랐다. 여행을 많이 다닌 p양과 나는 이번 여행에 많이 보는 것보다,세명이서 같이 가는데 큰 의의가 있었으며  푹 쉬고 쇼핑하고 맛있는 거 먹는데 주안점을 두었다면,해외여행의 기회가 적었던 k양은 한군데라도 더 돌아보는 게 목적이었다.

공항에서 만났을 때 이미 나는 양손에 쇼핑한 품목들로 넘쳐났다.

p양의 얼굴을 보니 썩 유쾌한 빛이 아니었다.

불현듯 , 미안했다

친구의 표정이 걸려서 맘 약하고 소심한 나는 그 뒤로 쇼핑을 안했다.

내가 굳이 물건을 더 구입해서 친구의 맘을 상하게 하고 싶지않았다.

문제는p양 계속 쉬지않고 쇼핑을 했다.

중간에서 난 안절부절.

그래도 p양이 쇼핑할 때마다 나는 옆에서 부지런히 아는척하며 쇼핑을 도와주고 있었다.

쇼핑에 관해 무관심한 편인  k양은 자연스레 외톨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속이 많이 상했던 k양은 계속 정의라는 이름으로,우리 나라 경제 사정이며,사치와 허영에 젖어드는 여인네들을 은근 갈구고 있었다.

나는 정의라는 이름으로 타인을 공격하는,그 뒤에 감춰진 적의를  잘 이해한다.

 

급기야는 가기 전날 마지막 밤에 울면서 k양이 우리에게 집중공격을 했다.

너희 둘은 늘 그렇게 어릴 때부터 자기를 왕따 시켰으며

그렇게 늘 뭐가 좋은 지 시시덕거리기만 했다고..

 

망치로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k양의 그 기분을 이해못해서가 아니라 자존심이 그토록 강한 친구가 우리 때문에 그렇게 큰 상처를 받으리라곤 미처 생각을 못해서였다.

 

 

k양이 나중에 여행 다녀와서 내게 한 말은 이러했다.

너가 쇼핑하는 건 이해하겠어. 넌 평생 일하고 열심히 살잖아.

책도 열심히 읽고 배우기도 열심히 배우고..

근데..p양은  좀 그래. 말하자면 배가 아프다는 거다.

그랬다

평생 그 앤 늘 행복해보였다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외교관 아버지를 두어서 학교도 특례입학으로 들어갔고,학교 졸업 뒤에 외국인 회사 몇 년 다니다 나온 퇴직금으로 집을 샀는데,아마도 우리 나라에서 제일 부동산이 오른 경우에 속한다.

P양은 (백수 생활 백서)의 유희와 거의 비슷한 캐릭터다. 머리가 좋고 얼굴이 뛰어남에도 주특기가 잠자기이고,회사를 밥먹듯이 때려치우는 유희, 미래의 알 수 없는 행복을 위해 현재를 희생하지 않는, 그러면서도 자신의 인생에 대해 늘 당당하고 자신감있는 소신있는 선택

남들의 비난이나 수근거림에 동요되지 않는다.

 

좋은 머리로 취미가 명품,인터넷 쇼핑이고,아들 완벽한 매니저 하기,자신이 현재 즐겁지않으면, 구태여 오래된 옛친구라도 한치의 망설임없이 보지않고,현재 즐거운 친구에게 집중하는 p

뒤에서 나도 혼자 쑥덕거린 적도 있었는데, 그건 아마도 부러워서,자신의 선택에 대해 한치의 망설임 없는 그녀의 용기가 탐이 나서 그런 거였단 생각이 든다.

 

k양의 맘도 충분히 이해한다.

나라고 그런 생각 안 해봤을까..

난 나의 인생이 내가 노력한만큼,아니 그보다 조금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생각한다.

이에 비해,k양은 노력한 거에 비해 결과론적으로 좋은 결과가 안나온다고 생각한다.

p양은 전혀 노력을 하지않는 거처럼 보이는데 타고난 모든 조건으로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을 누리는 것처럼 보인다. 항상 여유있게 보이며,  안달을 부리면서, 죽어라 열심히 살아온 것 같아보이지 않는다.

 

p양이 노력을 하던,하지않던간에 그 친구가 누리는 모든 것들이 그 친구  몫의 삶이다.

누가 뭐라 할 수 없는

모든 사람이 자신이 노력한만큼의 결과가 평등하게 나와야 한다는 것은 세상의 다양성에 도전하는 생각 아닐까.

 

그 애의 그런 삶을 인정하지 않으면 상처받고 피곤한 건 타자가 아니라 본인 아닐까..

 

k양이 상처받은 지점은 실은 인정 욕구에 관한 부분이다.

자신의  지금의 삶은 누구한테든 인정 받을 수 없다는 자괴감이 든 거였고,친한 친구의지금의 삶도 인정 해주기 싫은 거..

자신의 인정받고 싶은 욕구와 상대의 인정 부재에 따르는 고통들..

 

내 삶의 중요한 목표 중에 하나도 인정 욕구에 관한 부분이다.

인간의 숙명인지,비극인지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해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타자라면,인간의 뿌리는 타자안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자기가 자기 확신을 가지는 것만으로 미흡하다면, 타자가 이 사실을 촉구해줘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인정 받기 위해서 나도 타자를 인정해 주어야 한다.

타자 부정은 자기 부정이고,타자 긍정은 자기 긍정이다.

나는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고,오로지 상대는 나를 위해 나만을 비춰주길 바라지만,타자도 나와 같은 입장이기에  쌍방향이다.

나를 위해 상대를 인정해주는 거다.

나는 오래 전부터 이 원칙을 지켜왔다.

나의 인정 욕구 실현을 위해, 내가 인정받고 싶은 타자에게는  더 열심히 타인의 인정 욕구를 수용한다. 타인의 욕구에 대한 소중한 자각이 ,역으로 나도 인정받는 계기이기 때문에.

 

타자를 그저 타자로 내버려두지않는다.

타자 속에서 나를 직관한다.

 

k양이 안타까운 지점..

 

여행을 다녀온 뒤에 우리 사인 그렇게 끝이 나버렸다.

셋이선 만나지 못하고 나만 양쪽의 친구들과 연락한다.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모습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건 영원한 숙제인듯 싶다.

 

 

 

 

 

출처 : 영원한 여울인
글쓴이 : 류혜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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