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 이야기—
하나 , 비 와 시 이야기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나는 비가 좋다.
언제부터인지 무슨 계기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에 집착하던 시기가 젊음이라면
조금은 쓸쓸하고 처량한 것들이 이해되기 시작하던 그 시기와 맛닿아 있을 것 같다
비가 주는 차분 한 느낌.. 그리고 빗소리가 음악으로 들릴 만큼 비가 좋다..
오늘은 하루 종일 외출을 하지않았다.
날씨가 좋은 날은 집에 있는 게 억울하고 아까워서 어떻게든 밖으로 나가고 싶지만
오늘 같은 날은 비가 주는 우울한 느낌을 즐기고 싶다.
뒹굴뒹굴 대다가 책을 읽기 시작했다.
신 경림의 시인을 찾아서이다.
마음이 너무 아파와서 저려와서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다.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던 정 호승 시인의 작품을 읽을 때는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너무 반갑고 너무 미안해서..
내가 그토록 시를 좋아했던 사실을 나 자신조차 잊고 살아왔다.
요 몇 년 동안 시집 한 번 들춰본 적이 없었다.
그토록 젊은 날 치열하게 매달리고 집착했던 시들을 어떻게 이토록 철저하게 외면해왔단 말인가.
강하게 꿋꿋하게 살아야만 하는 지금의 상황에서 내 안의 여리고 섬세한 부분은 심하게 앓고 있었는 지도 모를 일이다.
싯귀 하나하나가 내게 주던 그 깊은 울림과 잔잔한 여운이 다시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나 자신의 약한 부분은 더욱 더 다독여주고 달래가면서 생활해야겠
다고 다짐해본다.
세상살이에 너무 얽매여서 나 자신을 심하게 몰아붙이지는 말자고..
아가의 손톱을 깎으며.. –-
잠든 아가의 손톱을 깎으며
창 밖에 내리는 함박눈을 바라본다
별들도 젖어서 눈송이로 내리고
아가의 손등위에 내 입술을 포개어
나는 깎여져 나간 아기의
눈송이같이 아름다운 손톱이 된다.
아가야 창밖에 함박눈이 내리는 날
나는 언제나 누군가를 기다린다
흘러간 일에는 마음을 묶지말고
불행을 사랑하는 일은 참으로 중요했다
날마다 내 작은 불행으로
남을 괴롭히지는 않아야 했다.
서로 사랑하기 위하여 태어난 사람들이
서로 고요한 용기로써
사랑하지 못하는 오늘 밤에는 아가야
숨은 저녁 해의 긴 그림자를 이끌고
예수가 눈 내리는 미아리 고개를
넘어간다
아가야 내 모든 사랑의 마지막 앞에서
너의 자유로운 삶의 손톱을 깎으며
가난한 아버지의 추억을 주지 못하고
아버지가 된 것을 가장 먼저 슬퍼해
보지만
나는 지금 너의 맑은 손톱을
사랑으로 깎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비 오는 날 이야기 둘 –비와 우리들 이야기
찬 비 내리고 나 희덕
우리가 후끈 피워냈던 꽃 송이들이
어젯밤 찬비에 아프다,아프다,아프다 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힘드실까봐
저는 아프지도 못합니다
밤새 난간을 타고 흘러내리던
빗방울들이 그러하여마지막 한 방울이 차마 떨어지지 못하고
공중에 매달려 있습니다
떨어지기 위해 시들기 위해
아슬하게 저를 매달고 있는 것들은
그 무게의 눈물겨움으로 하여
저리도 눈부신가요
몹시 앓을 둣한 이 예감은
시들기 직전의 꽃들이 내지르는
향기 같은 것인가요
그러나 당신이 힘드실까봐
저는 마음껏 향기로울 수도 없습니다..
2007년의 봄에 정신없이 좋아한 두 편의 시가 있다..
기분이 좋고 햇살이 환한 날에는
오늘 밤에 장대비를 흠뻑 맞으면서 한강을 거닐며 내내 이 시를 생각했다..
꽃 송이들이 찬비에 아프다 아프다 하고 당신이 힘드실까봐 아프지도 못한다는 시인의 마음이 되어 버렸다..
찬 비에 꽃송이들만 아플까..
찬 비에 꽃송이들만큼이야 아프진 않겠지만 우리가 마음이 그 정도로 아프다면 대부분의 경우는 인간 관계에서 느끼는 회의감과 답답함이 아닐까 한다..
빗 속의 나무들은 정확한 간격으로 저들만의 생존법을 터득하고 있고 강물도 엉김없이 제 갈길을 찾아 흘러가는데..
사람들의 관계는 한 번 엉기면 도저히 풀리기 어려운 실타래처럼 꼬여만 간다..
일대일의 관계가 아닌 다수들과의 관계 속에서 생기기 쉬운 오해와 억측들은 서로를 힘들게 할 수도 있음을..깨달았을 땐 ..?
2년 동안 남극의 얼음 위에서 표류하던 27명의 대원들의 목숨을 구해냄으로써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라는 찬사를 듣고 있는 어니스트 새클턴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리더쉽의 부재,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이고 격려해주고 긍정적으로 발전 시킬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한 나 자신을 탓하며..~
편안한 휴식 속에서 더 많이 엉김도 풀어지고 상처도 터뜨릴 수 있는 지혜를 누군가가 주었으면 좋겠다..
비 오는 날 이야기 셋
비 오는 그림
비 오는 풍경을 소재로 한 그림을 한점 구입했다...
비가 좋다
빗소리가 잔잔한 음악으로 들리며 비가 주는 스산하면서도 약간은 외로운 느낌이 좋아지기 시작한다..
젊은 시절엔
..
애써 외롭다는 감정을 외면하고만 싶고 늘 무엇인가 북적대는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리고 소모시키기도 해왔지만
나이를 조금씩 먹는 다는 건..
북적대지 않는 갇힌 공간에서도 자기자신과 마주한다는 것이 두렵지 않다는 것이다..
자기자신을 여유롭게 맞이할 수 있는 그 넉넉함 속에서 쓸쓸한 비를 좀 더 즐길 수 있는 것 같다..
비를 소재로 한 그림..
비가 주는 서정적인 느낌과 사색의 느낌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는 이 그림이 내가 구입한 첫 번째 그림이다..
내가 좋아하고 친근하게 느끼는 소재로 한 그림이라 더욱 더 정감이 간다..
겨울 비가 주는 더 스산 한 느낌은 앙상한 나뭇가지를 통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저 나뭇가지는 피사로가 그린 빨간 지붕,시골 마을의 겨울 정취에서 보던 익숙한 쓸쓸함의 느낌이다..
그림의 하얀 배경은 위트릴로의 흰색 풍경과 닮아있다..
흰색이 주는 다양한 상상력은 나를 더 행복하게 채워주며
현란함이 아닌 아주 단순한 색깔로도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다는게 신기하다..
인상파가 주는 화려함 색감,화사한 빛,동화 속 같은 풍경들이 없는 다소 단순하고 밋밋한 그림이 이처럼 다양한 사고를 가능하게 한다는 건 작가가 주는 마법에 걸려든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넷 -- 비오는 날 점심 풍경
--- 비 오는 날 회사 앞 풍경---
비를 참 좋아한다. 아주 어릴 적부터 좋아한 건 아니고,아니 오히려 어릴 적엔 비 내리는 게 구질구질해서 싫었다. 비를 좋아하기 시작한 시점을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다.
31살 무렵..
젊음과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이 점점 더 희미해지고 화려한 것들만 이해가 되던 그 시점에서 한발짝 비켜나간 시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작고 사소한 것까지 조금씩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되었을 때 그렇게 비는 내 속에 소중한 친구로 다가왔다.
복잡하고 정신없는 일상을 차분히 정리할 수 있는 여유로움도 주고, 행여 나의 아집이나 독선으로 상처 받은 사람은 없는지에 대한 반성의 계기도 되며 생각나는 시가 있고 음악이 있어서 더욱 그렇다.
오늘같이 비 내리는 날엔 실은 복잡한 일을 접어두고 싶다.
그냥 감정의 흐름대로 아주 흐느적흐느적 움직이면서 글을 끄적거리다가 친구랑 수다 떨다가 맛있는 음식 먹으며 좋은 음악 들으며 그렇게 여유를 부리고만 싶다.
점심 시간에 잠깐 친구를 회사 근처에서 만났다.
점심을 후다닥 먹고 통유리로 된 카페에 앉아서 아주 달콤한 커피를 마시며 친구랑 수다를 떨었다.
문득 창밖을 보니 내가 늘 매일 보던 익숙한 풍경임에도 아주 달라 보였다.
비가 오는 느낌이 얹혀져서 그런가..
그 거리가 조금은 낯설게,사람들도 어쩐지 삶의 무게를 우산으로 힘겹게 막아내고 있는듯도 보이고..그렇게 그렇게 비오는 날은 나에게 멋진 시 한편으로 그리고 카유보트의 레이니 데이즈의 화려함 뒤의 고독으로 잔잔하게 다가온다.
비 오는 날 보고싶은 그림 –카유보트,레이니 데이즈
이 그림 너무 좋아해서 시카고 갔을 때 매일 이 그림 보러 다녔고,이 그림이 그려져있는 컵,이 그림이 있는 액자,이 그림이 있는 냉장고 자석..이 그림이 있는 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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