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리 , 비오는 날
빠리 비오는 날~
구스타브 카유보트 --paris street:rainy days,1877,오일 캔버스
이 그림은 내가 좋아하는 수많은 그림들 중에서 내가 정신없이 홀딱 빠진 그림 중의 하나이다.
어느 책에서 이 그림을 우연히 보았는데 그 책에 화가도 제목도 없어서 한참을 고생해서 알아냈다.
이 그림의 제목으로 비오는 날이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그대로였다.
제목만으로도 너무 정감이 간다.
비가 마냥 그리운 나에겐..~
나는 비가 좋다.
아마도 서른살 무렵부터였던 것 같다.
화려하고 눈에 띄는 것에 집착하던 시기가 젊음이라면 조금은 쓸쓸하고 처량한 것들이 이해되기 시작하던 그 시기와 맛닿아 있을 것 같다.
비가 주는 차분한 느낌,그 빗소리가 음악으로 들릴만큼 비가 좋다....
복잡한 일상을 차분히 정리할 수 있는 여유로움도 주고 행여 나의 아집으로 상처 받은 사람은 없는지에 대한 반성의 계기도 주며 생각나는 그림이 있어서 더욱 그렇다.
보도블록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의 경쾌하면서도 약간은 처량한듯한 영롱한 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회색빛 우울한 느낌이 묘하게도 내게 위안을 준다.
딱히 외로울 것도 없는 삶인데도 인간 본연의 외로움이랄까 그러면서도 가슴 어느 한켠에 묻어둔 그리움의 냄새가 내게로 스며든다.
한껏 멋을 잔뜩 낸 남녀가 같은 우산을 쓰면서 어디론가 바쁘지않게 조심조심 걷고있다.
같은 우산을 쓰고 있지만 두 사람은 각기 다른 곳을 쳐다본다.
여자의 눈빛과 남자의 눈빛이 영원히 만나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다.
특히나 여자의 아득히 먼 곳으로 달리는 그 눈빛이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나의 편견일지는 모르지만 남자에게 있어서 여자는 자신의 성공의 한 증거로써 장식품인 듯하다.
여성의 옷은 비오는 날과 어울리지 않게 심히 불편해보인다.
누구에겐가 보여주기 위한 옷차림이고 자신의 가치를 옷과 미모로밖에 보여줄 수 없는
여인의 내면의 서글픔도 읽힌다.
남성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여성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을 잘 실천하고 있는 것 같다.
아름답고 평화로와 보이는 그림에게 왜 이렇게 메스를 가하는지 나도 어쩌면 어느 한 부분에 약간의 콤플렉스 탓일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겐가 의지하고 기댐으로써 얻는 편안함보다는 힘들지라도 혼자 우뚝서보리라 힘차게 전진하는 내게 가끔씩 힘들다는 그런 생각이..`힘들 땐 그냥 나도 좀 더 편하게 살고싶다는 욕망도 가끔 들기도 한다.
그래서 이런 그림을 보면 어느 한켠에서 슬금슬금 시기심과 환상에 젖게된다.
이 그림은 작년에 시카고 미술관에 가서 며칠을 계속 눈을 떼지 못하고 쳐다 본 그림이다.
볼 때마다 다른 감성과 생각으로 나의 머릿 속을 자극하는 그림이다.
솔직히 이 그림이 왜 그리 나를 끌어당기는 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빠리의 자유스러운 분위기,비오는 날의 쓸쓸함,여인의 앳띠면서도 우수어린 표정,세상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루어낸 당당한 남자의 표정..
돈과 명예 그리고 사랑이라고 믿는 여자까지 완벽하게 소유한 남자에게 인생의 또 다른 도전은 무엇일까..?
여성의 아릿따운 모습으로 자신만의 아름다운 꿈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남성의 지위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화려한 장식품으로서의 역할에 자신이 진정 만족하고 있는 걸까..?
본인이 누릴 수 있는 여러가지 편안함에 자신을 희생시킨 것일까..?
아니면,자신보다 여러가지로 강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관심을 보여주며 아기처럼 다독거림을 받는 것에 만족을 해 자신의 여러가지 욕구조차도 못느끼는 상태일까.?
내가 이 그림을 너무나 사랑하는 이유는 어쨌든 비 오는 날의 잔잔하면서도 처량한 느낌을 좋아하는 마음과 파리 거리의 아련한 아름다움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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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그림을 오랫동안 쳐다본면서 내 귓가에 들려오는 음악이 있다.
라흐마니노프의 화려하면서도 슬픈 교향곡 2번3 악장 아다지오.
라흐마나노프가 살던 불안한 시대의 러시아 혁명 직전 상황에서도 끝까지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던 민중들의 마음을 그대로 대변한 처절한 아름다움과 이 그림이 묘하게 겹쳐진다.
화려함 뒤에 감춰진 그 절절한 고독과 그러면서도 그 상황을 뒤집어버리기엔 너무나 많이 와버린 그래서 자신을 달랠 수밖에 없는 그러한 모습들을 애처롭다고 할 수도 없는.. 속물적인 근성을 가진 누군가의 모습도 함께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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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의 콤플렉스인 어느 부분을 아프게 건드리면서도 그래도 나 자신일 수밖에 없는 현실에 은근한 환상을 주기 때문일른지도 모른다.
이 그림을 그린 카유보트는 도시의 풍경과 남자들을 모델로 한 그림을 많이 그렸다.
카유보트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부모로부터 받은 많은 유산을 인상파 화가들을 지원하는데 많이 썼다고 알려지며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고독한 생활을 즐겼다고 전해진다.
카유보트에서 나오는 여성들의 모습은 당당한 여성보다는 다소곳하고 순종적인 여성상이 많이 보이는 걸로 보아 남성 우월주위적인 경향이 강했던 것 같다.
카유보트의 그림들은 개인적으로는 좋아하지만 이 화가와 내가 만난다면 잘 지낼 수 있으려나 마찰이 있으려나 매우 궁금해진다.
( 이 그림은 시카고 미술관에서 직접 촬영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