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인피니트 제스트 독서모임 - 반고흐, 영혼의 편지

페르소나 벗기 2017. 1. 19. 12:11

인피니트 제스트 독서모임 진행합니다.

다시지오님의 발제로 책은 (반고흐, 영혼의 편지)입니다.

 

1)일시 :2017년 1월 20일  금요일 저녁 7시

2)장소: 고메 갤러리  02-518-8645


 (압구정역 5번 출구 300 미터 직진 후 좌측 우리은행 우측 신한은행 사이 골목으로 진입후 신구초등학교 정문 앞 빠리 바게트 옆 건물)

다시지오님이 발제 자료를 프린트해서 오신다고 하니 참석 여부를 알려주시면 , 준비해오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2017년  새해 투명하고 열정적인 영혼을 가진 반고흐를 만날 수 있어서 행복했다.


반고흐에 대한 여러 생각들이 정리되지 않은채 흩어져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나니, 나의 여러 가지 감정들이 보인다.


도록과 노래와 여기저기서 단편적으로 본 자료를 통한 고흐와

실제로 직접 가서 그림을 통해 본 고흐는 완전히 달랐다.


이성적인 판단을 통해 느낀 고흐에 대한 감정이 한대 얻어맞은 것처럼 얼얼했던 곳은

시카고의 아트 인스티튜트와

네덜란드의  반고흐 미술관과 동경 서양국립 미술관에서였다.


특히나 반고흐 미술관에서 해바라기를 보았을 때 , 아름답지도 그렇다고 아주  뛰어나게 잘 그린 것도 아닌 것 같은 그림이 나의 발목을 붙잡았다.



나의 여러가지 성격 중에서 스스로 볼 때  강박증적인 성향이  아주 작다고 느끼는 편인데

그럼에도 내게 이런 성향이 있구나를 느낄 때는 사람에 대한 호불호 성향을 단정짓는 것을 볼 때이다.


선입견이나 판단을 유보한 채 지내면서  스스로 느끼자고 다짐해도 동물적인 방어 본능에 의해 미리 적당선을 조정하는 경우를 본다.


 스쳐지나가는 사람에게도 그런 경우가 있는 것 같고, 특히나 잘모르는  화가나 배우, 감독, 가수들에게도

 그러는 걸 보게된다.


고흐도  내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아주 좋은 그림, 아주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감동을 크게 받을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래도  뭔지 모를 힘이 나를 반고흐 미술관으로 끌여당겼고, 해바라기가 나를 끌여당겼다.


화려함보다는 쓸쓸함이 느껴졌고, 분출하는 힘이 느껴졌고, 그림 너머로 봐주기를 기대하는 기교가 아닌,

그림 자체로 봐줄 것을 기대하는 소박한 힘이 다가왔다.


무덤 앞에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달라는 함형수 시인처럼 나도 해바라기라면 마음이 편해질 거 같았다.

내셔날 갤러리에서 분명히 여러 차례 보았을 해바라기가 어느 순간  나의 마음을 훔치게 된 건,

나의 마음을 스스로 교정하고, 통제하려는 본능에서 자유로워지는 나를 느낄 수 있어서였다


자기 통제와 기만을 통해 자신을 편안한 위치에 놓이게 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싶다.

아무 것에도 나의 마음을 얽매거나 통제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노력과 공부와 감성이 만나면서 나의 지평은 넓어지고 깊어진다고 생각한다.


내가 제일 무서운 건 멈추고 움직이지 않을 때니까

변한다고, 변해간다고 이해받지 못한다고 해서 움추려들지 않는다.

고흐가 그랬던 것처럼.



나의 정원에, 해바라기 씨를 뿌렸다.

한강에서 보았던 내 키만큼 당당하게 해를 바라봤던 해바라기가 아닌,

해를 바라볼 줄 모르는 고개만 숙인채 해를 사랑하는 해바라기였다.


나의 기대를 채워주지 못했던 해바라기였지만, 어느 새 연약한듯 강인한

아름답지 않은듯 아름다운 그 노오란 해바라기에 여름 내내 고마웠다.

어느 새 해바라기는 고흐고 함형수시인이고, 나의  어린 시절의 마음이다.







십년전 쯤에 고흐에 대해 썼던 글들을 들여다 보았다.

내가 쓴 글이지만, 지금 보니  타자가 쓴 글처럼 낯설었다.

나의 마음이 이랬구나



지난 날의 나, 지금의 나, 미래의 나

내겐 타자처럼 연구하고 성찰하고 보듬어줘야 할, 신비로은 작은 세계다.




 십년 전에 쓴 글이네요 ~~



 하나  )


봄날에 이렇게 웅크린 사람은 없었으면~

 

 






 

고흐의 그림은 고등학교 때 좋아했었다.

좋아하던 친구가 빈센트 노래를 부르던 적이 있었다.

그 친구가 그 노래를 불렀다는 이유만으로 고흐가 좋아져버렸다.

그 시절엔 그랬다. 사람 좋아하는데 무슨 이유가 있었겠냐..

 

열정은 넘치는데 공부라는 틀에 갇혀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열정이 비틀거리던 그 때..

고흐도 그렇게 터져버릴 것 같은 열정을  소유한 사람이라는 게

동질감으로 쉽게 더 다가왔다..

 

우수에 찬 광기 어린 그이 일생이 그 시절엔 더 멋있고 더 안쓰럽게 다가왔던 것 같다.

 

 

이제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서 바라  본 고흐는 그 시절처럼 절절하게 내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내 인생의 무게도 만만치 않은데 고흐의 무게까지 감당하고 싶지 않다는 현실적인 감각이 많이 발달했기 때문이리라~

너무 답답하고 너무 암담하다.

 

같이 나까지 질식해버릴 것 같다.

고흐의 그림에서 느끼는 감정들이다.

외면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것이다.

 

 

저 세계를 잊고 환한 것만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

내 삶의 본질과 깊은 내면의 세계는 잊어버리고 싶다는 생각..

그런 것들이 고흐를 멀리하게 된 것이다..

많은 고흐의 그림 가운데 나를 가장 아프게 하고 마음 속에서 떠날 수 없게 하는 그림이 있다.

바로 이 그림이다..

고흐의 광기어린 붓질에 질식해 버릴 것 같던 내게 이 그림은 너무 신선한 슬픔으로 다가왔다..

 

 

무릎에 고개를 파묻고 슬프게 앉아있는 이 여인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모습이다.

나 인 것 같기도 하고.. 내 친구인 것 같기도 하고 ..내 동생인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쉽게 외면할 수 없는 동질감으로 그러나 엄청난 쓰라림으로 다가온다.

얼마나 슬픔이 깊길래, 얼마나 감당 할 수 없는 슬픔이길래 저리 웅크리고 있단 말인가..

 

 

양지 바른 곳으로 데리고 가서 조용히 손을 잡아주고 따뜻한 커피 한 잔 먹여주고 싶은.. 그런 마음이 들게 하는 그림이다..

 

 

저 연인의 슬픔이 일시적인 호의나 관심만으로 해결 할 수 없는 것임을 알지만~ 그래도 그 정도도 안해주고는 내가 못견딜 것같다.

 

 

아이와 자신의생계를 위해 몸을 파는 여자를 위해 고흐는 실제로 저 여인과 같이 살기도 했다고 한다..

 

한 여인의 슬픔을 외면하지않고 책임지려 했던 고흐는

우리가 진짜 상상만으로 꿈꾸던 멋진 남자임에 틀림없다.

 

이 여인처럼 막막한 슬픔에 잠겨 있을 때 아무 조건없이 손 내밀어 줄 그런 사람이 내게  얼마나 있던가..

 

 



  두울)






고흐

1889

ROSES

OIL on CANVAS

33x41.3 CM

 

고흐는  나처럼 꽃을 많이 좋아한 것 같다. 이 그림을 보면서 생각했는데 아이리스,장미,해바라기 등 꽃을 주제로 한 그림들이 은근히 많은 것 같다.

초록색과 분홍색의 화려하고 아름답다.

고흐의 그림에서 색채의 대비를 보노라면 처음에는 밝은 마음이다가 , 점점 더  고흐 내면의 열정이 내게로 전해진다.

뭔가 나까지 침잠에 빠진다.

 

저번에도 얘기했지만 반 고흐는 지금은 내가 아주 많이 좋아하는 화가는 아니다..

개인적으로 그의 그림을 보고 와 하는 감탄사는 절로 나오기는 하지만 나의 마음 깊숙하게 와닿지는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싫다거나 하는 거는 아니지만 그럭저럭 좋은 화가일뿐이다.

내가 생각해도 참 많이 신기한 일이어서 왜그럴까를 많이 생각했다..

 

 

너무 많이 알려지고 대중들에게 너무 많이 사랑을 받는 화가라는 점이 나를 한발짝 멀리 떨어지게 만든 가장 큰 원인이다.

다른 사람이 다 좋아하는 것은 굳이 좋아하고 싶지 않은 일종의 구별짓기를 통한 정체성의 결과일 수도 ..그동안 수십년동안 획일화라는 거대한 감옥에 갇혀서 지낸 것에 대한 강한 반발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가장 합리적이고 타당한 이유는 굳이 내가 아니어도 너무나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고흐를 나는 양보하고 싶은 마음이다...

좋아하는 화가까지도 동질화되어가는, 좋아하는 브랜드까지 ,

좋아하는 음악까지 다들 비슷해져가는 것이 너무 싫어서

이렇게 작게 반발하는 지 모르겠다.

고등학교 때 돈 맥클린의 빈센트를 듣고 정신없이 빠져버렸던 고흐를 이리도 멀리할 수밖에 없는 사연은 이러하다..

 

사실 안좋아하기 보다는 문화적인 기호까지도 누구에겐가 통제당하고 조종되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에 대한 반발로 이렇게 조금은 멀리서 바라보는 지도 모르겠다.

 

 

왜 우리 나라 사람들 일본 사람들은 고흐를 그리 많이 좋아할까..

아니 전세계적이지..~

 

다수가 좋아하는 분위기에 휩쓸린 사람도 있을테고..

 일단은 그의 일생이 사람들의 동정심과 감수성을 자극하는 가슴아픈 부분이 있었을테고 ,그림이 그 사람의 일생과 연관지어서 비교적 이해하기 쉬운 면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일상에서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무심히 넘겨버리던 부분들까지도 아주 세심하고 아름답게 표현한 마음이 진심이라는 것이 강하게 느껴지는 점도 있겠지..

감자 먹는 사람들과 같은 그림에서 느껴지는 소박함은 샤르뎅이나 페터 드호흐나 할스의 그림처럼 따스하고 편안하다.

 무엇보다 그의 그림이 솔직하고 진실 하다는 것이  쉽게 이해가 되고 느껴지고 가슴도 아파지고.. 그래서 좋아하는 것이겠지..

 

또 하나는 그의 그림이 우리들이 평소에 느끼는 쓸쓸함이라든가 외로움과 같은 피할 수 없는 감정이 너무나 잘 실려져있다는 거다.

한없이  고독해보이는,의사소통을 거부하고 혼자라는 틀안에 갇혀서 보는 이를   너무 가슴저미게 하는 호퍼의 그림처럼..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이해하기 쉬운 색채의 화려함이라는 거다.

색채가 화려하고 예쁜 경우엔 그림의 내용과 상관없이 본능적으로 끌리는 경우를 자주 경험했을 것이다.

마티스의 그림이 보나르의 그림이 ,모네의 그림이 친숙하고  정겨운 이유는 색채가 주는 이끌림이다.

그가 능숙하게 다루었던 노란색의 아름다움은 발을 떠나지 못하게 하는 마력이 있으며 보라색의 애잔함과 하늘색의 청량하면서도 애잔함은 발목을 붙잡게 하는 아픔으로 다가온다.

 

 

 

그 당시에는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동생 테오만이 유일한  소통자였을까..?) 그의 그림과 그의 행동양식과 그의 생각들이..

100년이 지난 지금에서는 온 세계적으로 열렬하게 지지받고 열광하게 하는 것을 하늘나라에서 고흐가 본다면..어떤 기분이 들까..?

 

 

모든 사람들이 열광을 하고 지지를 해준다해도 그렇게 불꽃처럼 격정적으로 토해내듯 ..가슴 속에 응어리를 풀어내듯 그리 강렬하게 그렸을까..

 

그의 거친 붓자국과 두꺼운 마띠에르에서 느껴지는 둔탁함과 색채의현란함은 어쩌면.. 세상에서 이해받지도 사랑받지도 못하던 그의 엄청난 고독과..너무나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에  세상을  향해 던지던 그의 몸부림이었을 것 같아 내 마음이 묵직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이 자신을 존중해준다는 사실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게 되고 자신을 용납할 수가 있다.

 

아무도 사랑해주지 않는 자신에 대한 패배감이 얼마나 그를 평생 괴롭혔을까..

우리가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사랑의 두 가지 종류 가운데

.하나도 얻지 못한 채 쓸쓸히 죽어갔을 고흐..

 

 

그의 일생을 짚어보고 공감하면서과 그림을 다시 한 번 더 꼼꼼하게 살펴보련다..

 

그를 이해하게 된다는 것과  그림을 좋아하게 되는 것이 얼마나 연관 관계가 있는지..~ 궁금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