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노래

꿈에--조 덕배

페르소나 벗기 2010. 5. 26. 23:36

이천 십년 오월 이십 육일

비 온 뒤 하늘 눈부시게 맑고 깊은 날

어쩌면 이렇게 하늘이 높고 맑고 고울 수가 있을까 하루 종일 탄성을 자아내게 만들던

정말로 보내기 싫었던, 한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았던 파아란 하늘

뭉게 구름 몽실 몽실, 솜털처럼 보드라울 것 같은.

 

작년 봄 이후에 이렇게 고운 하늘의 모습을 처음 보는 것 같다.

비가 온 뒤의 아픔을 견뎌낸 아주 의연하고도 어여쁜 하늘은

하루 종일 내게 콧노래를 부르게 했다.

 

점심 시간엔  덕수궁으로 달려갔다.

덕수궁에서 바라 본 하늘은 유달리 더 파랬다.

 

오전 중에 곽 지균 감독의 자살 사건으로 맘이 시렸었다.

곽 지균 감독

최인호의 겨울 나그네 동명 소설을 영화하여 내게 감성이 남달랐던 감독으로 기억되었다

워낙 소설을 맘 아프게 처절하게  읽은지라 영화로 표현해서 망치지 않을까 내심 걱정을 많이 했는데 소설과 또 다른 감동으로 다가왔었다.

 

첫 장면에서 강 석우와 이 미숙이 만나는 장면이 잊혀지지 않는다.

이십년도 더 지난 기억인데도 아주 생생하다,

자전거를 타고 가던 강 석우와 이 미숙의 대학교 교정에서 부딪힌다.

그때 둘 사이에 미묘한 떨림

나까지도 설레이고 두려운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졌었다.

 

이 미숙의 절대 청순미와 강 석우의 깊은 고독감에 찬 내면 연기, 그 조각같던 얼굴 또한 가슴 시리게 좋아했었다.

한동안 강 석우 가슴앓이 심하게 했던 것 같다.

 

남달랐던 그의 감성을 생각하니 정말 가슴 아프고 서러웠다.

 

그러나 오늘 그의 죽음을 생각하며 애통해하기엔 미안하게도 날이 너무 좋았다.

 

덕수궁의 모란은 그새 다 져버렸다.

매말톱꽃도 거의 지고 있다.

모과 나무 꽃도 , 마로니에도, 덜꿩나무도 그 예뻤던 꽃들이 서서히 지고 있다.

때죽나무꽃이 무성하게 그새 피어서 나를 기쁘게 해주고 있었다.

 

대롱대롱 매달린 앙증맞은 때죽나무 귀여운 땡강장이 같은 느낌이다.

 

연신 하늘을 쳐다보며 감탄사를 뿜어냈다.

시드니와 뉴질랜드에서 봤던 너무나 부러웠던 그 하늘빛이다.

물감이 뚝뚝 떨어져서 내게로 올 것 같은.

이런 하늘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정말 감사할 일이다.

 

'회사 끝나고 인 디에어를 봤다.

조지 클루니의 매력에 빠져서 영화 내용도 잘 들어오지 않으려 했다.

해고 전문가인 조지 클루니 .

독신으로 일에 빠져서, 사람과의 관계를 깊이 들어가지 않고 쿨하게 즐긴다.

 

쿨해 보이고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자유로워 보이는 그의 삶이, 두 여자의 등장으로 조금씩 균열을 일으킨다.

 

사랑에 모든 걸 걸고 남자를 따라나서는 신입 사원과 같이 동행하면서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겠지.

 

집착이 없는 삶이 일견 우리가 원하는 삶인듯 보이지만 , 그 이면에 스스로 감당해야 할 것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관계가 주는 어느 정도의 외로움이나 고독감의 해소를 철저히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견디기에 자유로움은 보장 받을 수 있으리라.

 

관계에 의지해서 이루어지는 삶은, 자신의 생활에 제약을 받는 대신에 일정 부분 외로움의 해소라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을 것이다.

꼭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 일반적인 틀에서 보자면.

 

어느 것을 선택할런지는 철저하게 자신의 몫이다.

영화를

보고 집으로 와서 한강을 산책했다.

오미희의 행복한 동행을 들으면서 산책을 했는데, 라디오에서 조 덕배의 꿈에가 나왔다.

봄밤의 작약  향기와 그 탐스런 아름다움에 취해있는 내게 조 덕배의 꿈결 같은 목소리를 들으니 더 감미롭다.

목소리가 꽃과 같이 고웁고 금방 질 것 같은 안쓰러움도 묻어난다.

 

 

나의  젊은 청춘 시절 한복판에 가슴에 팍팍 와닿았던 소중한 노래이다.

노래 한  곡은 언제나 나를 그 시절로 데리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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