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노래

if you leave me now--chicago

페르소나 벗기 2010. 1. 31.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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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가 우리나라에 온단다.

당장 달려가야지.

2월 한달은 또 그렇게 시카코의 공연을 생각하며 힘을 낼 것 같다.

 

앞부분에 들리는 힘찬 관악기 소리에 가슴이 떨리고 가슴을 파고드는 애절함에 몸서리 처지는 곡이다.

얼마나 좋아했던가 이 곡도.

 

피터 세트라의 단아하면서도 여린듯 가슴에 와서 착착 안기는 목소리, 아주 정확하게 표현되는 그의 가사 전달 능력 덕분에 노래가 더 내 맘에 들어와서 살아숨쉰다.

요번에 피터 세트라가 오지 않아서 아쉽겠지만, 그래도 한번 가보련다.

그때 그 시절의 감성이 또 다시 되살아나서 정서적 격동에 시달리겠지만.

hard to say i'm sorry보다

 개인적으로 더 좋아하는 곡이다.

 

그룹명도 사람 미칠듯이 설레게 하는 이름이고.

시카고란 이름은 언제 들어도 소름 돋는다.

 

거기에 난 무엇을 두고 왔던가.

 

마음껏 미술관을 드나들었던 여유

쇠라와  카유보트 그림 앞에서 너무 반가움에 목이 메어서 꼼짝할 수 없던 내 자신

이게 꿈은 아니구나

 

마음껏 쇼핑하고 마음에 다는 것,거의  다 살 수 있는 경제력에 기반한 자신감

화려한 옷으로 성장한 사람들 틈에서 우아한 기분으로 보았던 오페라

낮에 봐도 햇살에 반짝반짝  부서지던 강

밤에 달빛을 받아 애잔하게 흐르던 강

문득 고개 들어 하늘 봤을 때 너무나 파랗던 ,링컨 팍에서 느껴졌던 초가을의 그 서늘한 바람

밀레니엄 파크에서 다양한 즐거움을 주던 분수대와 빈앞에서 입 못다물고 헤헤거렸던   열네살 소녀같던 마음

 

 

 

청소까지 다해주어서 너무 편안하고 쾌적했던 아파트

몇발자욱만 나가면 쇼핑센터, 미술관 가까웠던 천혜의 입지 조건

 

이렇게 많은 걸 누리면서 살 수 있는 내가 가끔씩 삶에 대해 절망하고 회의하는 건 나자신도 용납할 수 없는 오만함이란 생각에  자책감이 밀려온다.

 

더 많이 가짐으로서 행복이완성되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의 행복에 많은 도움을 주는 여러가지 여유와 자신감이 너무도  당연하다는 생각, 가질 수 없는 불가능한 욕망을 원하는 이 욕심에 내 스스로 놀란다.

 

내 자신의 존재가치가 내가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라든지,

내가 얼마나 누리며 사느냐에 침몰될 까봐 스스로 정말 두려울 때가 많다.

그런 속물 근성들 속에 , 세속적인 것이 주던 행복들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그것이 혹시나 단절 될 까봐 두려운 것이 아니라.그것들에 안주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을까, 소통이 주는 기쁨들도 차단할 수 있겠다 싶을 때도 솔직히 많다,

 

즉각적인 소통, 즉각적인 내 존재의 확인, 내 자신의 충분한 인정들이 그것들 속에서 가능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과의 관계가 힘들어지고, 그건 대부분 내 자신의 욕심에 기인한 경우가 많았다.

내 스스로 상대에 대한 기대치 조절에 실패해서, 오히려 내 마음 상처입을까봐 내 스스로 내 마음을 동여매는 경우들.

 

특히나 요즈음..

 

사람과의 적당한 거리 조절에 실패하고, 무언가 나를 채우는 것들이 경제적인 것들로 채워갈 때

그 때의 허망함도 난 모르진 않는다.

그러나 사람보다는 더 힘들지 않았다라고 생각한다.

 

 

내 자신의 존재 가치를 내가 즐거워하는 일로 채워갈 수 있기를

내가 좋아하는 이 노래들로..

 

시카고가 그렇게 도와주겠지.

 

다시 희망 가질 수 있을까

사람이 주는 희망

 

그렇게 채워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