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스크랩] 점프하고 싶은 봄날

페르소나 벗기 2009. 3. 11.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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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싱한 봄 기운을 받고 싶어  점프하고 싶은 봄날이다.

 

 

겨우내 움츠렸던 몸과 마음의 기지개를 펴고 어디론가 달려가고 싶은 계절이다.

 

이 봄에 필립 할스먼이라는 사진 작가가 생각난다.

유명인물의 사진을 많이 찍기도 했지만 특히나 우리가 아는 유명 인물들의 점프하는 모습을 담아낸 작가로 유명하다.

달리를 비롯,오드리 햅번,그레이스 캘리,오드리 햅번,브리짓 바르도의 점프하는 모습이 무척 신선하다.

 

 

할스먼은 우리네들이 보통 학교 교육에 의해 자신의 본 모습을 숨기는데 익숙해서 자신의 본 모습을 잃고 살아가는데,보통은 점프 할 때는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점프하는 그 순간이 내면의 모습을 닮아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숨김없이 자신을 활짝 열어 보일 수 있는 때,아니 숨길 겨를도 없이,저절로 자신의 모습이 되는 때,아무 것도 계산하지 않고 점프하는 행동에 몰입하는 그 순간의 자유로움..

 

그래서 나도 혼자서 점프를 해봤더니. 몸도 마음도 아주 가벼워지고 , 순간 입가에는 미소가 번져진다.

점프는 생각만큼 되지 않지만, 상큼한 봄기운이 내 안으로 들어 온 것 같다.

점프하는 순간만큼,나를 나자신이게 하는,나를 좀 더 관찰 할 수 있는, 내 모습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그런 순간은 언제일까..?

내게는 그림을 보는 순간과 음악을 듣는 그 순간이 가장 강렬하게 내 자신으로 살 수 있게 하는 것 같다.

 

 

요번 봄에 나를 강력하게 끌어당긴 그림은.. 히데야키이다.

 

 

하나히데야키의 예쁘지만 우수어린 눈동자

 

 

 

 

삼청동은 처음 가봤을 때의 진한 느낌이 내게 계속 여운으로 남는 곳이다.

몇 십년전의 삼청동은 지금보다 더 고즈녁한 느낌에 약간은 더 개발이 덜 된 촌스러운모습과 정겨운 모습을 가지고 있는 아주 편안한 느낌이었다.

엄마의 뱃속이 그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처음 봐서도 낯설지 않고 어디선가 어렸을 적 한번 보았을 것 같은 익숙함으로 그렇게 다가왔다.

 

삼청동은 특히나 수제비가 시원하고 맛나서 자주 다닌 곳 중의 하나이다.

 

봄과 가을에는 삼청공원이 매우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있으며 카페 산책 다니다가 슬슬 산책 삼아 걷기도 좋다.

앉아서 차 한잔 마시고 두런두런 얘기하다가 머리도 쉴겸 삼청 공원 쪽의 깨끗한  공기를 들여마시는 걸 좋아한다.

 

비 오던 날 정갈한 느낌으로 찾아간 갤러리는 국제 갤러리와 금호,현대 갤러리였다.

특히나 국제 갤러리는 히데야키 전시회를 한다고 해서 예전부터 한번 가봐야지 하고 계속 미뤄두었는데 비오던 그날 갑자기 히데야키의 여인네들이 너무 보고싶어 그냥 한달음에 달려갔다.

 

 

히데야키가 그린 여인네들은 아주 잘 있었다.

 

히데야키의 그림을 본 건 작년 봄 날 롯데 에비뉴엘 전시회에서였다.

그때는 나라요시토모 그림에 반해서 그 그림 보느라 거의 매일 가다시피 했는데, 그러다가 눈에 들어 온 그림이었다.

 

 

신비와 순수의 느낌으로,약간의 알 수 없는 공허감으로 다가 온 그림.

어디로가는지 갈 방향을 잃고 헤매는 그래서 허공에 내던져진 하얀 여인네..

어렸을 적 즐겨보던 순정만화 속의 큰 눈망울로 어딘가를 바라보는데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 아득하기만하다.

머리를 풀어헤치고 꿈을 꾸고있는듯한 몽롱한 눈동자와 목이 없이 어딘가를 정처없이 떠다니는 가녀린 여인네..

 

저 여인이 바라보는 곳은 어디일까

어디로 시선이 향하는 것일까.

왜 현실에 발을 디디지 못해서 저렇게 헤매이고 있는걸까.

이를테면 아비정전에서 나온 발없는 새의 느낌이 저런 것일까.

한평생을 날라다녀야하는..

죽을 때가 되어서 평생 한번 앉는다는..

 

우리네 인생이 혹시 저런 느낌일까.

 

무언가를 부여잡고 무언가로 채우고 누구에겐가 기댐으로써 평화를 바라지만, 그렇게 내면 안에서 채워진듯한 그 순간에 우리는 혹시 사라지는 건 아닐까..

 

나무나 돌처럼 자신 안에 분명한 존재근거를 가지고 있는 즉자존재와 달리,자신 안에 아무런 근거를 가지지 못한,그래서 무언가를 항상 열망해야 하는 대자존재로서의 사람의 숙명이 읽히는 순간이다.

 

그 열망하는 무언가가 우리에게 무슨 깨우침과 어떠한 근거와 안식을 줄런지는 계속 살아가면서 느껴야하는 부분이리라.

 

살면서 가끔씩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감정들과  솟구치는 수많은 열망 들 속에 지칠 때쯤 정말로 그냥 한점의 그림 속에 박제되었으면 하는 때..

 

내 속에서 바라는 마음이 넘쳐나서 ,뭔가를 이루려는 욕망이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구나를 깨닫는 순간,그냥 한줄기 빗물처럼,그림 속 여인들처럼 그냥 그렇게 살아가야지란 생각이 든다.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게 삶이란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인생에 크나 큰 의미를 부여하는 거 자체가 허전함을 내포하고 있으리라.

 

히데야키 속 여인네들의 눈이 내게 말해주고 있는 것은 어쩌면 그런 것들이리라.

점심 시간에 잠깐의 짬을 내어서 갤러리 구경을 하고 회사로 오면서 라디오에서 승훈의 비 오는 거리를 들었다.

 

별다른 노력을 하지않았음에도 이렇게 잔잔한 행복으로 다가오는 삶이란 참 희한한 매력을 주는 안개 속 풍경이다..

 

 

히데야키의 그림을 보면서 생각나는 그림이 여러 점 있다.

저 여인들처럼 하염없이 슬퍼보이는 ,다른 곳을 쳐다보는 그런 눈동자들.

 

 

 

둘-     제임스 티소의 아득히 먼 곳을 달리는 눈동자

 

 

 

 

 

1878년 캔버스에 유채  90  x 50 cm

제임스 티소 (1836-1902)

 

제임스 티소는 내게 볼수록 매력적인 그림을 선사한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유파라는 점이 자유롭고 신선한 그의 화풍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마음에 들고 남들과는 다른 고집스런 삶을 살았다는 점도 참 다른 느낌이 든다...

그림에서 언뜻언뜻 비춰지는 비판적인 시각,남들과는 다르게 사물을 바라 볼 수 있는  예리함은 존경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한다. 참 좋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전혀 눈에 뜨지않던 화가가

그림에 깊게 빠져든 시점에 내가 발견한 보물이라는생각에 더 흐뭇해진다..

사족이 너무 길었고..~

 

 이 그림의 제목은 무도회라는 그림이다..

언뜻 화려하고 들떠있는 무도회를 그린 흥겨운 그림이라 생각될 지 모르나 나는 이 그림에서 잊을 수 없는 권태로움과 공허한 눈빛의 여인을 만났다..

쉽게 지워질 수 없는 아슬아슬한 여인의 안타까운 눈빛이 내게도 느껴지는 건 제임스 티소가 의도했던 바일까..?

 

이 그림에서 나는 마네의 폴리제르바의 술집이란 그림에 나타난 그 여인의 눈빛이 교차됨을 느낀다....

그 그림에서 나는 그 커다란 눈망울이 인상적인 여인의 눈빛을 애수의 잉그리드 버그만과 흡사하다고 썼지만 이 여인의 눈빛은 그것과는 약간 다른..

 

나른하고 권태로운 여인의 눈빛이 느껴지기도 하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분명하게 이룬 순간에 느껴지는 마음 속의 순수함이 괴로운듯도 한 표정이다..

 

이렇게 화려한 드레스와 우아한 분위기의 무도회는  이 젊은 여인이 누리기엔 쉽지않을 것이다..

자신의 가장 내면적인 당김을 포기하고서 얻어진 화려함이 분명하다..

 

아무 생각없이 살아간다면 하루하루의 안락하고 우아한 삶이 행복이라 여기고 살아갈 수 있으나

가끔씩 이렇게 다른 곳으로 시선을 향할 수밖에 없는 자신을 어떻게 달랠 것인가..

문득 이 여인의 생각이 궁금하다..~

젊고 아리따운 여인과 분명하게 대비되는 노신사의 모습이

나의 마음 속에 아련함을 주는 이유는

아직은나도   포기하기 힘든     무엇인가가 있단 얘긴가..?

 

이 그림과 거의흡사한 배경으로 분홍 드레스를 입고 무도회에 나타난 여인을 그린 그림이 있는데 그 그림의 제목은 야망을 품은 여인

이다..

 

그 그림도 가만히 들여다 볼수록 참 슬프다.

 

제임스 티소는 분명 평생 사랑을 목숨 걸고 살았던만큼 이러한 무도회에 대한 불편한 심기가 있었던 게 분명한 것 같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가장 완벽한 거래..

 

젊고 아리따운 아가씨와

부유한 노신사..

 

사랑이란 그 느낌도 거래 될 수 있는 사회에 대한 비판이라면  내 생각이 너무 앞서간 걸까..?

 

 

 

-

허공을 달리는 눈동자

 

 폴리 베르베르 극장의 술집에드와르 마네 (1881—1882),코톨트 미술관,런던

---개인적으로 마네의 그림을 참많이 좋아하는 편이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작품 중의 하나가 이 그림이다

 

 

 

 

 

이 그림을 보면 가슴이 서늘해지는 느낌을 가지지 않는가..?

웬지 모르게 스산한 바람이 부는 것 같다..

저 여인의 눈빛이 그렇다..

 

사람을 볼 때 가장 많이 보는 곳이 보통은 눈인 경우가 많다.

굵게 쌍꺼풀 진 크고 맑은 눈을 좋아하는 편이다.

가장 눈이 기억나는 여인이라면 카사블랑카에서 잉그리드버그만의 그 눈이다.

 

중학교 때 처음 본 영화 카사블랑카에서

연인과 헤어지면서 바바리 코트를 입고 울먹이던

잉그리드 버그만의 애절한 눈빛이 너무나 또렷하다..

그 당시엔 내가 어려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해선 전혀 공감할 순 없었지만 그 눈빛만은 가슴을 파고들었었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그 영화를 다시 보았을 땐 그 여인의 눈빛이 많이 이해가 되고 공감이 갔었다..

 

눈자체가 크고 시원하게 생겼기 때문에 슬픈 모습도 더 크게 느껴진다..

보통은 동양인의 적은 눈에선 눈빛 자체도 읽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 그림에서 처럼 시원하게 커다란 눈에서 더욱 더 슬픔도 더 잘 느껴지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커다란 술집에서 갑자기 느껴지는 슬픔이란..

보는 사람도 참 많이 당황스럽다..

 

술집에서 일하는 아가씨인 것 같다..

 

자신의 몸을 이용하여 돈을 버는 것에 대해 갑자기 환멸을 느낀 것 같기도 하고

갑자기 많은 사람들 속에서 자신의 속마음을 내보일 수 없이 명랑하게 자신을 포장하는 것에 대해 비애를 느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사회가 급격히 변화해 가면서 몸은 계속 사회가 요구하는 패턴에

맞춰서 살아가고 있지만 저기 마음 한 구석에는 따라가지 못하는 여린 마음이..느껴진다..

그래서 그림 속의 여인의 슬픔이 더 마음에 와닿는 것 같다..

 

 

--같은 공간 ,저마다 다른 외로움

 

 

 

 

 

 

압생트 에드가 드가(1834—1917)-파리 오르세 미술관

드가의 많은 그림 중에서 이 그림은 묘한 흡인력을 가지고 있는 그림이다.

압생트는 알코올 70프로 정도의 프랑스산 독주이다.녹색을 띤다고 한다.

수없이 많이 보아 온 여인의 표정이지만 유독 이여인의 체념한 듯한 눈빛이 쉽사리 잊혀지질 않는다.

 

같은 공간이지만 서로 아무런 연관도 없어보이고 아무런 관심도 없다..

서로 알고 싶어하지도 않고 아무런 도움도 주고 싶지 않다..

단절된 현대인의 일상을 이처럼 훌륭하게 묘사한 작품이 있을까..

여인의 눈빛은 절망에 빠져서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표정이기도 하고..

아니 그것이 좀 더 지나쳐서 사람에겐 희망을 걸 만한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그런 표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누군가를 기다리는 작은 희망도,기댈 사람은 없노라고 체념한  사람에게도 실은 똑같은 형태로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

 

그러나 자신의 외로움과 아픔만 심하다고 느낄 뿐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아픔에 대해선 한없이 무디기만한 현대인들 모두가 자초한 슬픔일런지도 모른다.

 

내가 다가가고 내가 먼저 베푸는 것은 손해라고 인식하며 살아가기에 서로 다른 아픔을 각자 간직한 채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우리들은

 

 




다섯-

내 젊은 시절 한자락을 크게 차지하는 이 문세..이 문세 노래의 대부분을 작곡한 작곡가 이영훈

 

 

 

 

 

 

 

 

 

이 문세와 함께 했던 청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문세의 노래를 많이 들었다.

난 아직 모르잖아요, 광화문 연가,옛사랑,이별이야기..

콘서트를 내내 쫒아다니며 별밤에 사연을 보내가며 마냥 신났던 게 엊그제 같은 느낌이다.

 

한 달전, 어느 미술관에서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난 아직 모르잖아요를 들었을 때 지난 젊음의 시간들이 한꺼번에 튀어나왔다.

 

약간은 설레이기도 하고,울컥하기도 하고,그러나 그때의 감성이 아닌,약간은 무뎌진 감정으로 덤덤하게 들었다.

 

지금에 와서, 요새 들어도 전혀 질리지않고 여전히 나를 울릴 수 있는 노래는 옛사랑이다.

 

이 노래도 많은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도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않게 늘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가 사랑하는 정동길이 영훈의 추모비가 세워졌다.

 

짠했다.

그가 작곡했던 많은 노래 가운데 광화문 연가와 옛사랑이 더 가슴 뭉클하게 그립다.

옛사랑 중에서 가장 생각나는 가사..

후훗~~

 

 

사랑이란게

지겨울 때가 있지

내 맘에 고독이

너무 흘러넘쳐

눈녹은 봄날

푸르른 그대 모습

옛사랑 그 모대 모습

영원 속에 있네

 

흰눈 내리면

들판에 서성이다

옛사랑 생각에

그 길 찾아가지

 

광화문 정동길을 더욱 더 사랑스럽고 위로가 되는 공간으로 만들어준 작곡가 이영훈에게 감사하고 싶다.

 

 

여섯~파리에 다시 가고 싶다.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보면서 케이트 윈슬렛처럼 파리 생각을 하게 되었다.

파리 다녀 온 지도 벌서 6년이 다되어 간다.

하나도 머릿 속에서 놓치지 않으려고 머리 속에 꽁꽁 다 넣어두었는데,이제는 안타깝게 하나 둘 씩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오랜 시간 동안 보고 또 보았던 오르세이에서의 그림들은 기억에서 조금씩 멀어지고,베르사유 궁전도 눈에서 멀어지지만, 또렷하게 어제처럼 기억나는 장면은  파리의 밤이다.

 

낮보다 아름다웠던 찬란한 파리의 밤

 

밤새 골목길 모퉁이 카페에 앉아서 두런두런 나누던 얘기들, 12가 되어도 끊임없이 걷던 바스티유 오페라 거리,샹제리제 거리..

 

그곳을 오래 기억하려고 난 베르사유 장미 만화책을 잔뜩 들고가서 틈나는 대로 그것을 읽었고, 시내로 움직이는 지하철에서 게리 무어의 parisienne  walkways를 들었다.

 

 

고등학교,대학교 때 지독히 좋아했던 노래.

게리무어의 신들린 기타 연주,씬리지에서 보컬을 담당했던 필리뇻의 심금을 울리는 보컬

기타 소리가 사람 울음 소리 같기도 하고 어쩌면 사람의 마음을 그렇게 흔들어 놓을 수 있을까.

문학청년을 지망했다던 필리뇻의 감성을 그대로 닮은 애닯고도 처연한 목소리에 애가 탄다.

수백번을 들어서 판이 너덜너덜해졌는데도, 내 그리움은 도저히 달래지질 않는다.

 

게리무어는 로이 부캐넌과 더불어 제일 좋아하는 기타리스트에 속한다.

 

대학교 3학년 때인가.

그날도 매일처럼 그렇게 라디오를 틀어놓고 잠이 들었는데

새벽녘에 잠이 깨었다.

그때  PARISIENNE WALKWAYS 나오고 있다.

순간 잠이 깨면서 뭔지 모를 슬픔이 내게 밀려들었다.

 

그때 뭐 그렇게 큰 슬픔이 있었을까만 그냥 까닭모를 슬픔..

그 뒤로 이 노래가 더욱 좋아져 듣고 또 듣고 온 몸이 떨리는 느낌을 받았다.

 

좋은 노래는 항상 나를 여러가지 감성으로 자극한다.

 

다시 한번 파리에 가서 이 노래를 들으며  1949년 파리를 생각해보고 싶다.

그리고 필리뇻과 게리무어의 조국이었던 아일랜드도 가봐 할 나라에 추가되었다.

 

 

출처 : 영원한 여울인
글쓴이 : 류혜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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