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가을엔 떠나고 싶다~
여행은 중독이다.
쇼핑 못지않은.. 현실에서 너무 빡빡한 일상이 되어 지칠 때, 또는 별로 놀라울 일이 없어서 약간은 허무한 느낌이 들 때 문득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진다.
어디라도 상관없지만 누구냐는 상관이 있다. 맘에 맞지 않는 사람과 가게 된다면 그건 완전 고역이다.
몸이 녹초가 되고 나른해질 때,의욕이 넘쳐서 생기가 돌 때,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가고싶은 곳이 달라진다.
그리고 마음의 상태에 따라 예전에 갔던 여행지를 반추해 볼 때 각 각 생각나는 곳이 다르다.
요즈음은 끊임없이 시카고를 갔을 때가 기억난다.
딱 1년 전의 기억이다.
시카고에서 누렸던 완전한 평화..
내가 하고싶은대로 내가 가고픈대로..
내가 먹고싶은대로
세상에 태어나서 그렇게 모든 것에 구애를 받지않고 내맘대로 할 수 있는 시절이 얼마나 될까..
먹는 거,사는 거 하다못해 다 별것 아닌 일들까지도 끊임없이 누군가의 허락을 받아야하고 동의를 얻어서 진행이 된다면 얼마나 숨막히랴..
하지만 내 생활의 많은 부분에서 아직도 남의 지시와 간섭을 받아야 하는 일이 많다면 더더욱 그리워지지 않으랴..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관심이 있어서 그런 거라고 위로를 하고 받아들이지만.. 어느 날은 문득 하루 종일 나만을 온전히 보살피며 챙기며 살고 싶은 때가 있다.
나이가 들면서 확실히 드는 증세다.
혼자서도 왠만큼은 다 자신이 있어서라기 보단..
항상 누군가의 관리 대상인채로 살아 온 지난 날을 생각해보고서이다.
학교에선 가르치는 내용까지 적성과는 상관없이 일정한 커리큘럼으로 관리했으며, 시회에 나와서도 끊임없이 무엇인가로...
내 자리 내 지위에 맞추어서 끊임없이 개인의 미세한 행위,일정한 태도와 행위를 요구하는 패턴에 길들어져 온 지난 날들에 대한 복수일까..?
그래서 요즘은 미셀 푸코가 정말 끌린다.
혼자서 혹은 둘이서 아주 단출하게 여행이 아닌 떠남을 하고 싶다..
제법 긴 시간을..
낯선 여행
자작시
삶이 갑갑하다고 느껴질 때
생존하기 위한 모습으로 숨겨야할 때
진정한 자신과 만나고 싶어질 때
낯선 곳으로 떠나고 싶어진다.
진정한 모습으로 만날 수 있다면
삶이 주는 어떠한 무게라도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낯선 곳에서 있던 모습이 그리워질 때마다
기억나는 곳이 있어서 행복하다.
그 자리에 있던 모습을 생각하면
그곳에서 충만했던 모습을 떠올리면
사는 게 힘겹다 해도
못내 아쉬운 열정으로 아련하다 해도
그래도 그 시절이 있었음을
진실한 모습을 선물해 준 그 시간이 있었음을
그랑자트섬의 일요일 오후-1884 조르주 쇠라(1859-1891)
1884-1886/캔버스에 유채 물감 207.5 x 308cm/미국시카고미술관
늘 언제나 나의 마음을 움직이는 그림..
많은 그림들이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고 나의 여러가지 가능성과 생각의 실마리를 제공하지만 그 중에서도 단연 나를 사로잡은 그림이다.. 이 그림은~
볼 때마다 내게 다른 느낌을 주는 그림의 화려한 색채만큼이나 다양함으로 나를 자극한다.
언젠가 나는 이 그림은 한편의 영화보다도 가슴저린 시한편보다도 더 많은 느낌을 준다고 쓴 적이 있다.
나는 이 그림으로 논문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하며 산다.
쓰고 또 써도 내 느낌과 감동을 표현할 수 없다는 자괴감만 가득할뿐이다.
시카고를 간다고 했을 때 나는 이 그림만 생각하며 아주 설레이며 기쁘게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막상 달려가서 실제로 바라 본 그림은 생각과 상상 그 이상이었다.
우선 엄청 큰 규모의 그림에 압도되었고 그 주위에 엄청난 인파에도 놀랐다.
시카고 미술관이 가장 자랑하는 그림 중의 하나인 이 그림에는 항상 사람들로 어지럽다.
너무 흥분되고 벅차서 자리를 떠나지 못하게 하던 그림..
다른 그림보다가 생각나서 또 와서 보고 또 와서 보고..
그림에 있는 사람 수도 세어보고 그림이 주는 따뜻한 햇살도 받아보고 한적하고 여유로운 느낌으로 쉬고 있는 사람들의 평화로움도 느껴보고..~
이 그림은 1880년대에 하위 중산층 계급 사람들이 강변을 산책하고 피크닉을 즐기기 위 파리 교외의 그랑자트섬에 놀러 온 사람들을 그린 그림이다.
처음에는 그림의 세심함이랄까 투명한 맑음이 느껴지는 서정시 같은 느낌이랄까 그러면서도 묘한 알 수 없는 슬픔이 느껴진달까 뭐 그런 복합적인 면에 반해서 이 그림을 좋아했다.
그러다가 이 그림에 들어 간 엄청난 작가의 노력과 과학적인 노력에 더 놀라게 되었다.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70점 이상의 예비 스케치가 그려졌다고 하고2년동안 멀리서 그림을 보았을 때 혼합되는 미세한 색점을 칠하는 점묘법을 발전시킨 것이다.
인물 배치의 엄청난 조형 감각, 합리적이고 이지적인 색채 표현..
우리가 바깥에서 보는 대상은 한 종류의 고유한 색만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복합적인 조합을 보인다고 쇠라는 생각한 것 같다.
그 생각은 색채 이론뿐아니라 인간에게도 그대로 적용시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한 가지 면으로는 파악 할 수 없는 사람들의 깊이
이 그림에서 느껴지는 것은 다양함의 아름다움이다.
각기 다른 모습의 사람들이 뿜어내는 하모니는 신비하고도 경건하기까지 하다.
그림에서 가장 눈에 띄는부풀린 치마를 입은 여인이 창녀라고도 하던데 그런 것은 나랑은 전혀 상관없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 사람이 무엇을 하던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은 나이가 주는 지혜다.
흑과 백으로 분리해서 모든 것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옭아매고 가두려던 나의 편견들이 그림을 자꾸 보고 생각하면서 많이 자유로워지고 여유로워짐을 느낀다.
그림에서 시작 된 나의 가치관 깨부수기는 아직도 계속된다.
내가 가진 인식의 틀과 고정관념이 깨지는 건 얼마간 계속 아플지라도 계속 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그림을 통해서 넓어지고 있는 시야가 나를 계속 도와 줄 것이다.
우리 가까이이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아름답게 보면서 사랑할 줄 아는 마음..
인간은 현실 세계 속에서 생활하고 행동한다.
그러나 거기에서 자기의 꿈만을 본다. 빌레리가 한 말..
현실 세계안에서도 엄청난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고 그 현실에서 시한마디 떠오르게 할 수 있는 예술가에게 엄청난 경의를 표현하고 싶다.
그리고 이 그림을 보며서 느꼈던 평화로움 뒤에 스물스물 피어나던 슬픔의 냄새에 대해서 다음엔 한 번 더 쓰고 싶다.
그 느낌은 의사소통의 부재가 아닐까싶다.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계속 그림을 뚫어지게 보다보니 내가슴을 치면서 올라오는 느낌이 외로움이라는 거다.
저마다 자신의 영역에서 벗어나오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에 갇힌 사람들이 느끼는 외로움..~
그런 사람들의 특징 하나는 자신이 왜 외로울수밖에 없는지 인정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맘 열고 손내밀면 세상은 따뜻해지는데..
물론 그럼으로써 타인에게 상처도 입고 아프기도 하고 괴롭기도 할테지만 자신의 성에 갇혀서 성장을 하지않는 것보단 깨지더라도 그 영역을 어느 정도는 부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자신의 영역에서 편안한 느낌과 타인과 의사소통에 따른 안정감과 지지의 절충이 심히 어렵다는게 숙제이긴 하다.
혹시 어쩌면 북적거리는 사람 속에서 느껴지는 평화로움은 한 여름날의 꿈으로 표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그림은 시카고 미술관에서 직접 촬영한 것입니다)
THE FOUNTAIN 1907
OIL ON CANVAS 71.4x 56,5 cm
(1856-1925) 코스모폴리탄적인 인물 미국의 존 사전트는 피렌체에서 태어났다. 그는 모든 경력을 유럽에서 쌓았고 런던에서 죽었다.
당대 상류 사회의 사람들의 초상화를 가장 멋지게 그린 초상화가 가운데 한사람이다.
이상.. 행복을 주는 그림 중에서 발췌~
그림을 통한 세상 읽기만큼 행복한 일이 있을까..?
그림을 통해서 화가의 일생도 알아보고 화가의 그림에 담긴 의미도 알아내려고 애쓰며 또 그것들과 상관없이 나 혼자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니 참 짜릿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림을 보노라면 내가 느꼈던 감정과 공감하기도 하고 몰랐던 부분에 대해서는 새롭게 깨우쳐 편견업이 바라보는 세상보기에 한발짝 다가가고 성숙해지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것처럼 행복한 일은 없다.
내가 몰랐던 세계를 경험하는 일,내가 감추려고 무의식 속에 억압하고 있는 감정들까지도 끄집어내서 비판없이 나를 점검하고 받아들일 수 있음이 그림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거다.
내가 마음 속으로 은근히 흠모하고 있음에도 도덕이라는 잣대를 통해서 감추려고 하는 나만의 또 하나의 꿈은 상류 사회의 화려함이다.
호사스런 옷으로 치장하고 여유로운 웃음을 날리며 몸치장 이외에 달리 신경 쓸 일이 없어보이는 상류 사회의 먼 꿈에 대한 동경과 비판이 그림을 통해서 대리만족으로 다가온다.
그 화려함을 내게 보여주는 화가는 존 사우전트 싱어이다.
속물이라고 밀어붙이기엔 그들의 표정이 너무 환하고 당당해서 가질 수 없어서 슬픈게 아니라 그 자체로도 아름다움이라고 칭송해주고 싶다.
존 사우전트 싱어는 초상화에 능하여 당시의 유럽의 상류층,명망가의 많은 작품을 주문 받아 높은 인기를 누렸다.
그의 화려한 기교를 바탕으로 한 초상화는 명망가들의 제 일순위 콜렉터 작품이었다.
자유분방함이 넘치면서도 명랑한 분위기의 그림은 르느와르의 느낌도 많이 전해지지만 정적 사우전트는 멜라스케즈이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사우전트 그림의 여인들은 평범한 이들에게 난 너희랑은 달라하며 차별화 할 것을 요구한다.
그들의 옷에서 미소에서 나같이 평범한 사람들은 따라기기 벅찬,자신들의 신분을 과시하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그림을 감상하는 과정에서 간혹 속상할 수 있다면 오늘날의 사회가 계급 사회가 아니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상승의 길?이 열려있다는 걸로 위안을 주고싶다.
그 길이 막막하고 멀게 만 느껴지지만 그래도 가능성 하나로 시도해 봄 직 하지않은가..
그리고 하나 더 ..
모든 부를 죄악시 하던 이중적인 사고가 오히려 여분의 축적에서 가능한 화려한 문화를 쇠퇴시키는 결과를 낳지않았나하는 반성의 계기도 된다.
모든 화려한 문화는 어느 정도는 사치와 허영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본다.
베르사유 궁전을 보라~
다만 부나 권력,학벌로만 접근하려하고., 그걸로만 모든 것을 파악하려는 획일적인 줄서기의 폐쇄된 가치들을 넘어서서
모든 개인의 자질과 능력이 다양한 방법으로 인정 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 개개인 하나하나가 나름대로의 위치에서 다 행복과 자유를다 누릴 수 있는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길 그림 한 점을 보면서 빌어보는 나의 작은 소망이다.
(이 그림은 시카고 미술관에서 직접 촬영한 것입니다)
시카고 떠나는 마지막 날 시카고 공항에서 짠했던 감정은 무엇 때문인지 나도 정확히는 모른다..
다만 부지런히 움직여서 많을 것을 얻으려고 노력했던 내게 조금이라도 나만의 느낌을 가져오게 해 준 것에 대한 감사함과..
내가 좋아하는 것을 지속적으로 소유하지 못할 때의 그 서운함이 뒤범벅이 되어서일 거라는 짐작만이..~..
아름다운 도시의 건축물과 도시의 불빛과 독창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한 여유있는 풍경들을 계속 내가 가지지는 못하지만 나의 눈과 마음에 남아 있겠지..
아름다운 감정을 느끼고 그 아름다움을 가지못해 드는 아쉬움과 그 갈망의 마음은 때때로 남아서 상실감과 허전함으로 나를 뒤흔들겠지만..
나의 일상 속 어디에선가도 그 아름다움의 흔적들은 분명히 있을거라고 위로를 해본다..